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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식문화관광해설사의 숨겨진 문화재를 찾아서

기사승인 2020.03.28  10: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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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설이 깃든 유리고인돌, 사은암(四隱巖), 하문암(下門巖)

대체적으로 낙동강 동쪽은 퇴적암지대고 서쪽은 화강암지대다.

낙동강의 모래는 강 서쪽으로 흐르는 백두대간에서 발원한 내성천(영주시), 영강(문경시), 감천(김천시), 회천(성주군과 고령군), 황강(거창군과 합천군), 남강(함양․산청․진주․의령)등지에서 실려 온 것이다.

모래는 화강암이 풍화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화강암은 용암이 밀고 올라오다 지하 10km쯤에서 멈추어 서서히 식어 만들어진 암석이다. 지하에 있던 화강암은 1만년에 1m씩 융기하는 과정을 거치며 지상에 모습을 나타나려면 1억년 정도 걸린다.

창녕군은 중생대 쥐라기와 백악기에 형성된 퇴적암이 대부분인데 화왕산 일대는 화강암지대다. 창녕군에 흩어져 있는 고인돌은 거의 화강암이다.

우리나라는 질 좋은 화강암(花崗巖)이 풍부하다. 화강암의 뜻을 풀어보면 언덕위에 핀 꽃으로 비유했다. 푸른 솔밭 위로 불쑥 솟은 하얀 화강암을 아름다운 꽃으로 표현했다.

옛 선비들은 하얀 화강암 위로 흐르는 수정 같은 맑은 물과 푸른 소나무를 최고의 경치로 보았다. 이런 삼박자가 갖추어진 곳에는 정자나 누각을 짓고 자연을 즐겼다.

큰 바위를 숭배하는 행위를 거석숭배(巨石崇拜)라 한다.

거대한 바위 속에 깃든 신령을 숭배하는 것으로 세계 각지의 민족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자연숭배다.

이것을 크게 나누면 첫째 돌의 항구성 ·견고성 등에 비추어 돌 자체에 초자연적인 힘이 내재한다는 관념에 입각한 주술적(呪術的)인 신앙이다.

둘째 돌에는 조상의 영혼이나 신령 등의 영적인 존재가 강림(降臨)하여 거기 깃들인다는 애니미즘적(的)인 신앙에서 오는 것 등이 있다.

불상, 탑도 화강암으로 만들어 졌다. 불상과 탑은 바위 속에 계신 부처와 탑을 정성을 들여 모셔 나온다고 표현한다. 거석숭배 사상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해석이다.

어느 마을이나 큰 바위를 숭배하는 흔적들이 남아 있다. 특히 치성을 드리는 바위들은 대부분 고인돌인 경우가 많다. 창녕군에 흩어져 있는 전설이 깃든 바위에 대해 나름대로 공부해 보았다.

○ 화왕산 삼지(三池) 위에 있는 용바위

화왕산은 창녕의 진산(鎭山)이다. 창녕사람들은 신령스런 기운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뭄이 들어 비가 오지 않으면 이곳 용바위에 기우제 지냈다. 용은 물을 관장하는 상상속의 동물이다. 용을 달래서 비를 내리게 한다는 생각이다. 근처에는 너럭바위에는 용지동천(龍池洞天)이라는 명문이 있다.

○ 최송설당바위와 이은대(吏隱臺)바위, 탕근바위

최송설당이라는 명문이 있는 이 바위는 화왕산 자하곡 도성암 조금 못미처 소나무숲속에 있다.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민비)가 시해되자 고종이 궁녀 최송설당에 명하여 진혼(鎭魂)굿을 올린 유서 깊은 곳이다.

이은대는 창녕현감 한강 정구(鄭逑)선생이 업무에 시달리다 이 곳 바위에 앉아 노닐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는 곳이다. 바위 윗면에 300여개의 알구멍(성혈)이 있어 청동기시대의 무덤이 고인돌로 추정된다.

탕건(宕巾)바위는 자하곡 입구근처 하천 옆에 있는데 탕건은 조선 시대 사대부가 평상시 쓴 것으로 벼슬을 뜻한다. 이곳은 입시나 공무원 시험 등을 치는 사람들에게 효험이 있다하여 지금도 치성을 드리고 있다.

○ 사은암(四隱巖)과 하문암(下門巖)

사은암은 벼슬길을 포기하고 초야에 묻혀 지낸 박주순, 박한우, 권 우, 박규하 4사람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사리 마을에서 제단을 차려놓고 매년 정한 날짜에 제사를 지내는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한다. 이 사은암은 고인돌로 알려져 있다.

하문암은 사은암에서 산 쪽으로 300여 미터 떨어진 “반야노블카운티” 가는 길에 있다. 하문은 여성의 여근(女根)을 말한다.

바위의 모습이 여근을 닮았다. 옛날 홍역과 마마가 마을을 휩쓸 면 많은 아이들이 희생을 당했다.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이 바위에서 치성을 드리면 자식을 점지해준다는 전설이 서린 고인돌이다. 윗면에 성혈이 30여개 있다.

○ 칠성바위(창녕 유리지석묘)

창녕지석묘(昌寧支石墓)는 장마면 유리에 있는 고인돌이다. 1974년 2월 16일 경상남도의 기념물 제2호로 지정되었다.

전설에 의하면 마고할미가 만리장성을 쌓는데 필요한 돌을 처마에 담고 가다 성(城)이 완성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내려놓은 것이라 한다.

이 바위는 치성바위(칠성바위)로 불리며 옛날 과거시험보러가는 선비들이 정성들여 치성을 드리면 들어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7개의 고인돌이 북두칠성 형태로 있었는데 일제 강점기 때 파괴되고 지금은 1기가 남아있다.

○ 계성천 상류에 있던 개울가 바위들

계성천 상류쪽 옥천저수지~개성교 구간 하천에는 불그레한 화강암 바위들이 즐비했다. 차바위, 말 바위, 스답바위등으로 불리며 계성천을 설치예술로 꾸며놓았었다.

봄여름이면 물놀이 하는 아이들과 봄바람 살랑이면 봄처녀들이 차지했고, 빨래하는 아낙네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고, 어스름 저녁이면 장정들이 막걸리 잔을 나누던 옛 사람들의 향취가 진하게 묻어나던 친근한 바위들이 많았다.

바위들은 유속을 낮추어주고 아름다운 개울물소리를 들려주고, 물고기들의 은신처를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2003년 태풍매미로 하천이 범람하고 많은 사람이 다치거나 실종되는 일이 벌어졌다. 지자체에서 하천을 정비하면서 옛 사람들의 풍류와 멋이 깃든 바위들이 산산이 부서졌다. 부수는 것은 순간이다.

○ 하곤양집 이원(怡園)바위와 담장밖 용바위

옛 하곤양(본명 하재구)집 안에 있는 “기쁠 怡, 동산 園” 명문이 새겨져있는 바위는 현 명덕유치원내의 만옥정서도회(萬玉亭書道會)건물 뒤편 숲속의 바둑판형 고인돌이다. 이원은 원래 중국 소주(蘇州)에 있는 아름답기로 유명한 정원이다. 하곤양은 정원을 아름답게 꾸며 이름을 이원이라 붙였다.

하재구군수의 호(號)가 소주(小州)이고, 조선에까지 알려진 중국 강소성에 있는 유명한 정원이 소주(蘇州)에 있어 한자는 달라도 발음이 같은 것에 착안하여 중국 이원에 견줄 만큼 아름답다는 뜻으로 이원(怡園)이라 한 것으로 여겨진다.

용바위(용바구)는 하곤양이 치성을 드려 군수가 되고 큰 부자가 되었다. 그래서 매년 5~6회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하곤양의 재산은 엄청나서 곧잘 도둑이나 화적들에게 돈을 털렸는데 한번은 돈에다 표시를 하여 화적들에게 내어 주어 그것을 추적하여 범인을 잡고 보니 집안 조카였다고 한다. 집안 조카는 하곤양의 재산을 강탈하여 인근의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는 활빈도로 활약한 젊은이였다.

그의 도당은 20여명으로 하곤양의 꾀로 잡혀서 밀양 감옥에 수감되었다.

옥에 갇힌 하씨 젊은이는 그 후 옥을 부수고 탈출을 하였는데 밀양 남천강을 한 밤 중에 헤엄쳐 건넜다. 그런데 강 중간에서 큰 구렁이가 몸을 감아 사투 끝에 사람이 뱀을 죽이고 구사일생 집으로 돌아왔다.

그 며칠 후 한밤중에 문이 흔들리고 바람이 거세게 불더니 뱀의 혼령이 복수를 하러 나타났다. 그 구렁이는 곧 용이 되어 승천을 할 건데 죽어 원한이 컸다. 큰 담력으로 겨우 뱀의 혼령을 막고 다음날 송현동 무당들을 다 불러 모아 큰 굿을 벌려 뱀의 혼령을 위로 했다. 그래서 뱀의 혼령은 이 용바구에서 용으로 승천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비사벌뉴스 bsb271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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