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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물길 따라-1(무심사~외삼학나루)

기사승인 2020.04.24  16:5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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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동강과 회천이 만나는 절경(絶景)중의 절경, 송곡개비리길

오종식문화관광해설사의 숨겨진 문화재를 찾아서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회천

개비리길,

강변이나 바닷가의 좁은 길을 비리길 또는 개비리길이라 한다.

개비리길은 개(犬)가 길을 만들었다는 이야기와 바다나 강가를 뜻하는 갯가에 나있는 길이다. 옛 영남대로 문경새재에 토끼비리길이 있으니 개비리의 개는 개(犬)가 아닌 물가로 해석하고 「물가 벼랑에 있는 길」이 더 설득력을 얻는다.

남지 개비리길, 진주 새벼리․뒤벼리길, 통영 동피랑․서피랑길, 여수 금오도비렁길등이 있다. 지역마다 비리, 벼리, 피랑, 비렁등 조금씩 다르게 표현하고 있다.

창녕군은 낙동강 60km 구간에 5개의 개비리길이 있다. 강 상류에서부터 송곡(덤말리)개비리길, 등림개비리길, 이이목개비리길, 남지개비리길, 임해진개비리길이다.

개비리길은 폭이 좁고 수레가 다닐 수 없지만 사람이 다닐 수 있는 벼랑 가에 나있는 지름길이다. 이웃한 마을과 마을을 연결해주는 가장 빠른 길이라 많은 사람들이 애용하던 길이다. 민초들의 애환이 담겨있는 길이다.

이웃마을에 농사, 길흉사, 장터, 학교 가는 길이요 형님과 누님들이 도시로 일떠나던 길이다. 시집가는 누나들이 눈물 흘리며 가던 이별의 길이다. 저마다 숱한 애환을 간직한 전설의 길이다.

절경중의 절경 송곡(덤말리)개비리길

송곡개비리길 절경

이방면 송곡리 덤말 무심사에서 이방면 장천리 우산 율지교까지 약 800m 강변 벼랑길이다. 고령에서 내려오는 회천이 낙동강과 만나면서 강이 굽이쳐 만든 깎아지른 벼랑에 길이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숲속 좁은 길이다.

옛날에 이방 송곡․달성 구지면 대암등 인근 마을 사람들이 우산나루나 우산마을과 죽전․등림마을로 오갈 때 이용하던 지름길이다.

개비리길에서 바라보는 강 건너 성주․고령군에서 흘러드는 회천(모듬내)은 아름다운 풍경화 그 자체다. 발아래 푸른 강물이 약간은 무섭기도 하지만 짜릿한 느낌도 좋다. 이즈음에 가면 생강나무 여린 잎, 회잎나무(홀잎), 말발도리꽃, 분꽃나무꽃, 각시붓꽃, 미나리냉이꽃, 굴피나무 새순, 연녹색 참나무 꽃을 감상할 수 있다. 새색시같이 수줍은 녹색은 봄철에만 느낄 수 있는 숲의 선물이다.

강 건너 경북 고령군 우곡면 객기리는 우장춘박사가 씨없는 수박을 처음으로 재배했던 곳이다.

개비리길 초입에는 무심사가 있다. 이곳 강줄기에는 100여 년 전 홍수, 한국 전쟁, 배사고등으로 많은 사람이 희생된 곳이다. 절에서 매년 봄에 원혼을 달래기 위해 수륙제(水陸祭)를 지낸다. 절 뒷산으로 자전거길이 열려있는데 2012년 행정안전부가 추천하는 명품자전거길 20선에 선정됐다.

무심사 스님이 자전거 여행자들에게 무료로 숙식을 제공하고 있어 입소문이 나있다.

개비리길이 끝나는 지점 강 건너는 오광대발상지인 합천군 덕곡면이다.

잠시 눈을 들어 멀리 흘러드는 회천 물길, 크고 작은 산이 그리는 하늘 선을 보노라면 저절로 힐링이된다. 15분쯤 가면 벼랑 아래 기도처로 사용하던 작은 건물이 나타는데 불상이 모셔져 있다. 기도처를 지키던 사람은 가고 텅비어 있다. 사람은 가고 없어도 부처만 텅빈 공간에 쌓여있다.

길에는 수많은 시간이 쌓여있다. 눈밝고 시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소중한 자산이다. 무심사, 벼랑길 답사와 강줄기의 아름다운 풍광은 복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보길 권한다.

송곡리불상

개비리길 절벽아래 기도처

창녕군 이방면 송곡리 송곡산 미륵골 작은 청석암반 밑에 돌부처(석불 좌상)가 모셔져 있다. 이 석불은 고려 중엽 불상으로 매년 정월 초하루면 일대 마을 주민들과 인근 대구 부산 등지에서 300여명이 몰려와 기도를 했으며, 어떤 사람은 이곳에서 기도한 덕에 자녀를 얻기도 했다는 소문이 날 정도로 알려져 왔다.

불상은 길이는 약 110~120cm, 너비 80cm 전후, 무게 약 60~80kg 정도의 규모로서 오른팔이 절반 이상 떨어지고 얼굴 등이 일부 훼손되었다.

2006년 도난당했다가 창녕향토사연구회에서 노력하여 10개월 만에 경북 경산시 한 사찰에서 발견되어 찾아왔다.

송곡산성

송곡리 덤말리 송곡산 정상에 있는 산성이며 낙동강안의 절벽위에 둘레 약 660m의 토석성의 흔적이 남아있다. 옛 비화가야 시대에 물길을 지키던 성으로 추정된다. 낙동강과 회천이 갈라지는 곳으로 이곳은 교통과 군사적 요지다. 이런 곳에는 반드시 산성을 쌓아 길목을 지킨다. 송곡산성은 물길을 지키는 방어시설이다.

손터나리(客基津)

고방․ 송곡(덤말) 등에서 북쪽으로 경북 고령군 우곡면 객기리 손터로 통하는 나루로 이 나루터에 예전에는 김해 명지 등에서 올라오는 소금배가 장사진을 이루었다고 한다. 여기에서 소금이 경상남북도 일대에 보급되었는데 내륙 깊숙한 거창까지 이곳 소금이 보급되었다고 한다. ‘동국여지승람’ 창녕현 역원에는 현의 북쪽으로 27리 떨어진 이곳 송곡리에 다견원(茶見院)이 있었다고 전한다. ‘여지도서’의 창녕현지도에는 현풍과의 경계에 대견원(大見院)이 기록되어 있다. 이 원은 창녕에서 서쪽의 고령과 합천으로 이르는 교통로에 배치되어, 여기서 우산(牛山)나루를 건너 합천의 밤마리(율지)나루로 통했다.

고방장터

손터나루가 있었던 강변 모래밭에 있었다. 이곳 지형은 태극(太極)모양으로 경상남북도 경계가 구분되는 곳이다. 예전에 낙동강 상․하류의 수운 교통(水運交通)이 용이한 곳으로 강변에 나루터와 장이 번성하였다고 한다.

경북 고령군과 달성군 그리고 경남 합천군과 창녕군이 만나는 교통의 중심지라 많은 장꾼들이 찾는 장터였다. 150여 년 전에 개시된 이 장은 어느 해 물이 들어 폐동이 되면서 장도 폐시되었는데 이방면사무소가 있는 안리 내동으로 옮겼다가, 그 후 옥야동으로 옮겨 이방장이 되었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이방장을 옥야장, 고방장 등으로 부른다.

회천(會川, 모듬내)

개비리길을 지키는 굴피나무 새싹

회천은 모듬내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경북 김천부근에서 발원하여 대가천(大伽川)·소가천(小伽川)·안림천(安林川)·용담천(龍潭川)이 모여서 된 하천이라는 뜻에서 모듬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르는 모래샛강이다. 깨끗한 1급수에 서식하는 수마자가 서식하는 곳이다.

회천의 유역 일대가 대가야(大伽倻)가 있었던 곳으로 강을 따라 유적이 많다. 고대유적 고령군 개진면 양전리 암각화, 장기리암각화(보물 제605호), 쌍림면 안화암각화(경북 기념물 제92호)가 있다.

대가면은 동강(東岡) 김우옹(金宇顒), 한강(寒岡) 정구(鄭逑)선생의 고향이다.

쌍림면 개실마을은 조선중엽 영남사림학파의 종조인 점필재 김종직(1431~1492) 선생의 후손들의 집성촌으로 350여 년간 전통을 이어오고 있으며, 민속자료 제62호 점필재종택, 문화재자료 제111호 도연재, 유형문화재 제209호 점필재의 문적유품 등의 문화재가 있다.

성주군은 옛 성산가야(星山伽耶)의 고장이다. 성주 한개 마을은 북비고택, 진사댁, 교리댁, 한주종택, 도동댁, 극와고택, 하회댁, 월곡댁등 문화재로 지정된 고택이 즐비하다. 이 마을은 성산이씨가 대대로 살아온 전형적인 동성촌락이다. 마을 전체가 국가가 지정한 「국가민속문화재 제255호」로 지정되어 있다.

율지(栗旨, 밤마리)나루터

율지리는 지형지세가 독특하다. 낙동강이 대구 경북 땅을 벗어나는 지점, 낙동강 본류와 회천(모듬내)이 만나는 어귀에 속칭 ‘밤마리’로 불리는 율지리가 있다. 행정적으로 2개 도(경남, 경북) 4개 군(합천군, 창녕군, 고령군, 달성군)이 만나는 곳으로, 육로가 뚫리기 전까지는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오지였다.

이런 지리적 조건 덕분에 구한말까지 수로교통의 요충지로 물류 거점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수로교통이 쇠퇴하며 내륙 산간오지로 전락했으나 다리가 놓인 뒤엔 대중교통이 호전되어 다시 옛 명성이 살아나고 있다.

1999년 율지교(길이 640m)가 놓이기 까지 율지 사람들은 오로지 나룻배에 의지해 밖으로 나갔다. 다른 지역보다 나루에 의지한 세월이 길었다. 광복 전후까지 큰 선창시장이 열렸다고 한다. ‘경상도읍지’(1832년)에 따르면, 6일장이 섰는데 하류에서 올라온 상인들이 소금 등 해산물을 팔고, 대신 삼과 곡물을 사갔다고 한다. 당시 율지장은 주변의 현풍장, 이방장, 고령장보다 훨씬 규모가 크고 많은 사람들이 붐볐다. 장은 해방 후에도 이어져 부산, 김해에서 젓갈, 소금을 싣고 온 배들이 건어물, 땅콩, 감자, 무 콩, 배추 등을 싣고 다시 내려가곤 했다.

이처럼 활발한 나루터 번성은 오광대놀이패가 뿌리내릴 수 있는 바탕이 됐다. 그러니까 율지나루는 대광대(竹廣大)패를 낳은 ‘오광대놀이’의 발상지이다. 1860년경에 강 하류 사천(가산오광대), 고성(고성오광대), 통영(통영오광대), 마산(마산오광대), 부산(동래야류)등에 전파되어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다.

우산촌(牛山)마을

각시붓꽃, 미나리냉이, 으름, 분꽃나무

옛 우산촌(牛山村)으로 1617년 한강 정구선생이 부산 동래온천에 요양 갈 때 하룻밤을 묵은 마을로 유서 깊은 마을이다. 지금도 이곳 장천리(長川里)에는 우산(牛山), 牛尾(우미) 등의 이름을 가진 마을이 있어 이 일대에 우산나루가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마을은 낙동강변 둔치에 70여 호가 있었으나 4대강 공사 때 철거되고 마을 터는 이방면 공설운동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운동장 주변 마을을 둘러싼 울타리 숲이 조금 남아 있어 마을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지금도 옛 마을앞 강변에 2~3척의 배가 고기잡이를 하고 있다.

둔치에는 매실나무와 복숭아나무, 감나무, 배나무 등을 재배하는 과수원이 있고, 4대강 사업으로 과수원은 사라졌다.

오종식 기자 bsb2718@hanmail.net

<저작권자 © 비사벌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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