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오종식문화관광해설사의 숨겨진 문화재를 찾아서(59회)

기사승인 2020.07.31  19:22:08

공유
default_news_ad1

- 남이장군과 남휘정선공주묘

北征歌(북정가)-南怡(남이)

白頭山石磨刀盡(백두산석마도진) 백두산의 바위 돌은 칼을 갈아 다 없애고

頭滿江水飮馬無(두만강수음마무) 두만강 물은 말을 먹여 다 없애리라.

男兒二十未平國(남아이십미평국) 남아로 태어나 이십대에 나라를 평화롭게 하지 못하면

後世誰稱大丈夫(후세수칭대장부) 후세에 누가 일러 (나를)대장부라 할 것인가.

역사는 진실 앞에 솔직하지 못하다. 그것은 승자의 기록으로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역사의 진실은 말 한자의 턱뼈가 비바람에 풍화되어야 비로소 밝혀진다고 한다. 잘못된 역사는 되돌릴 수 없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 부곡면 구산마을

구산리는 경북 청도군에서 발원한 청도천이 낙동강 합류점 2km 상류에 있는 마을이다. 예전에는 구미(거북뫼:龜山)라 불렸고 마을 뒷산 형상이 거북처럼 생겼으므로 구미라 했다.

일제강점기 구미(龜尾)를 행정편의를 위해 한자획수가 적어 쓰기 쉬운 구산(九山)로 바꾼 것이다. 이것은 이름을 바꾸는 창씨개명(創氏改名)과 더불어 지명을 바꾸는 창지개명(創地改名)으로 우리민족의 정체성 말살의 일환으로 광범위하게 진행되었다.

발음은 같으나 한자를 바꾸어 쓰는 것은 역사왜곡이다. 지명에 역사가 녹아있게 때문이다.

마을 앞에는 빗돌을 세워 다음과 같은 글귀가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내 고향 정든 땅 구산리라네♬

사백여년 아득한 祖上의 香氣 이 땅에 서려있고/옛 놀던 푸른 山野 땀 흘리던 붉은 흙/사람은 가도 故鄕은 영원한 것/아침 해 온 누리 비치고 달과 별이 빛나듯이/내 사랑 龜山아 솟아라 빛나라 그 이름 찬란히

○ 충무공 남이장군(忠武公 南怡將軍)

남이(1441~1468)는 본관이 의령(宜寧), 의산군(宜山君) 남휘(南暉)의 손자다. 1457년(세조 3) 16세의 어린 나이로 무과에 급제했다. 이후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토벌한 공으로 적개공신(敵愾功臣) 1등에 책록됐다. 26세에 병조판서에 임명됐다.

남이장군을 총애하던 세조(1455~1468)가 죽었다. 예종(1468~1469)이 즉위하자 예종 원년(1468)에 간신 유자광(柳子光)이 역모를 도모한다는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다.

350년 후 순조 18년(1818)에 관직이 복귀되었고 충무의 시호가 내려졌다.

남이 장군 묘는 원래 부인이 함께 있는 쌍분 묘로,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소재지에서 북서쪽으로 약 2.5㎞ 정도 떨어진 남전리 산145번지 야산에 있다. 경기도 기념물 제13호다.

○ 남이장군 역모사건

역모에 연루되면 삼대를 멸한다. 당사자와 부모형제와 자식까지 모두 죽임을 당하고 여자들은 노비로 끌려간다. 모든 재산은 몰수되고 집을 부수고 못을 파서 물을 가두는 파가저택(破家瀦宅)까지 당한다.

남이장군은 간신 유자광의 모함으로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다.

역모사건의 전모는 이러하다.

예종 1년(1468) 하늘에 혜성이 출현하자 유자광이 ‘광망이 희면 장군이 반역한다’라고 고변하였다.

또 장군의 북정가(北征歌) 중 남아이십미평국(南兒二十未平國)남아이십미득국(南兒二十未得國)으로 역모 죄를 씌었다.

나라를 평화롭게 한다는 뜻의 평국(平國)을 나라를 얻는다를 뜻하는 득국(得國)으로 고쳐 모함하였다.

북정가는 만주 건주야인을 정벌하고 돌아오는 길에 백두산 초입에 이르러 북방 정벌의 벅찬 감동과 기계를 표현한 시다.

장군은 어머니 남양 홍씨, 장용대 장졸들과 잔혹한 환열(轘裂) 형을 받는다.

환열 형은 몸을 밧줄로 묶어 사방에서 수레나 우마로 잡아당겨 찢겨지게 하는 형벌인데, 거열(車裂) 또는 환열(轘裂), 오우분시(五牛分屍) 또는 오마분시(五馬分屍)라 하며 조선 중기에 없어졌다.

역모 죄에 형제들이 살아남은 예가 없다.

그러나 첫째 동생 남초(南眧)는 진도에 유배되고, 둘째 남개(南愾)는 서천으로 유배형에 그친다.

역모 죄로 집안이 풍비박산나지만 두 동생은 살려둔 것이다.

이상하지 않는가 ?

여기에는 선조인 조선 개국공신 재상 남재의 앞을 내다보는 지혜가 있었다.

○ 태조 이성계의 불망기(不忘記)

남재(南在)는 정도전, 조준과 함께 이성계를 도와 왕으로 옹립할 때, 기여한 공로로 조선왕조개국 1등 공신이다.

1392년(태조 1) 태조에게 재(在)라는 이름을 하사받고, 의성군(宜城君)에 봉해졌다.

어느 날 태조가 사후에 뭍일 곳을 찾기 위해 남재와 무학 대사 등을 대동하고 명당을 찾던 중 현재의 건원릉부근에 세 혈(穴)을 얻었는데, 이곳은 이미 남재가 묏자리로 잡아놓은 터였다. 이에 태조가 남재에게 묏자리를 바꿀 것을 제의했다.

남재는 “왕릉 예정이었던 곳에 어찌 제가 묻힐 수 있겠습니까 ? 이것은 불경일 뿐 아니라 후손에게도 중죄가 되는 것이니 불가합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예부터 왕의 묏자리에 묘를 쓰면 역적이 나온다는 말이 전해지므로 남재가 이를 걱정하니 태조는 “내가 불망기를 써줄 터이니 이것으로 증빙을 삼으라, 역적이 나와도 3대를 벌하지 않고 당대의 벌로 끝나게 해주겠다”고 쓴 불망기를 남겨주었다.

불망기는 근심을 잊으라는 뜻에서 망우(忘憂)가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서울 망우리(忘憂里)는 태조 이성계가 남재에게 불망기를 써주었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몇 대를 지나 남이장군이 유자광등에 모함을 받아 역적으로 몰려 죽임을 당했다. 후손들은 태조가 써준 불망기의 증빙으로 멸문을 면했다. 남이장군만 죽고 두동생을 유배형으로 그쳤다.

유배가 풀리고 낙동강 물길로 의령과 멀지 않는 영산 현에 터를 잡고 아전의 딸과 혼사를 맺었다. 의령남씨는 현재 옛 영산현 일대인 영산면, 부곡면, 길곡면 일대에서 활약하고 있다.

○ 부곡 남휘․정선공주묘

남휘의 묘는 경기도 안성군 양서면 장서리에 있었고, 정선공주묘는 경기도 용인군 용인면 동천리에 있었다.1974년 후손들이 지금의 위치로 이장했다. 묘는 쌍분이며 주변에는 원래의 묘에 있던 석물들이 그대로 옮겨져 다양하게 배치되어 있다.

1997년 1월 30일 경상남도문화재자료 제236호로 지정되었고 의령 남씨 종중에서 소유, 관리하고 있다.

남휘는 의령 남씨 7세손으로 남재(南在)의 손자이며 남이장군 할아버지다. 효심과 인품이 뛰어나다는 사실이 조정에 알려져 태종의 4녀인 정선공주와 결혼하여 부마도위(駙馬都尉)가 되었다. 1418년(태종 18) 보국숭록대부 의산군(宜山君)으로 봉해졌다.

정선공주는 조선 3대 태종과 원경왕후 민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민씨가 40세 때 낳은 막내딸이 바로 정선공주다. 의산군 남휘에게 출가하여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으며 21세로 생을 마감했다.

세종의 누이동생인 정선공주는 21세 젊은 나이에 요절하였는데 오빠인 세종이 매우 슬퍼했다고 한다. 남이장군은 정선공주의 손자이다.

남휘정선공주는 남이장군의 조부모이며 따님은 신사임당의 증조모이다.

○ 남이장군 사당 건립

비운의 영웅 남이장군을 기리는 사당과 동상이 2018년 4월 부곡면 구산리 산1-6번지에 건립됐다.

부곡면 구산리는 약 400년간 남이장군의 후예인 의령 남씨 의산공파 집성촌이며 남이장군의 조부인 태종의 부마 남휘 · 정선공주 묘역(경남도문화재자료 236호)이 있다.

남이장군의 사당과 역사 기념관은 순수 남씨 문중 성금으로 건립됐다.

특히, 이 기마동상은 발명가 남종현 회장이 기증했다.

남이장군이 죽은 지 552년이 흘렀다. 350년이라는 시간은 전설이 탄생할 만한 시간이 흘러서야 관직이 복귀되었다.

충무사 전시관에 있는 시를 읊으본다.

장검을 빼어들고

장검을 빼어들고 백두산에 올라보니

대명천지가 선진(腥塵)이 잠겼애라

언제나 남북풍진(南北風塵)을 해쳐볼까 하노라

 

역사의 현장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곁에 있다.

혹시 근처를 지나는 길 있거든 잠시 들러 그 때 역사의 행간(行間)을 들여다 보시길~~~

비사벌뉴스 bsb2718@hanmail.net

<저작권자 © 비사벌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3
default_setImage2

최신기사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