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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기사승인 2020.10.24  16:5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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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일(수필가, 방송인)

옛 어른들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란, 말씀을 하시는 걸 들을 때 마다 그 뜻을 몰라 궁금해 했던 기억이 있다. 국어사전에는 “열흘 동안 붉게 피는 꽃이 없다는 뜻으로, 한 번 성한 것은 얼마 가지 못해서 반드시 쇠하고 만다는 걸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이라고 적고 있다. 비슷한 의미로 권불십년(權不十年)이란, 말도 있다. 영어로는 Pride will have a fall. / Every flood has its ebb로 표기한다. 명예나 권력은 유한(有限)하다. 또, 부자(富者)가 3대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는 속설도 있다. 즉, 세상만사 영원한 게 없다는 것이다. 선현(先賢)들의 말씀을 새기며 책상 앞에 앉았다. 의뢰받은 원고를 마감시간 전까지 송고하기 위해선 서둘러야한다. 국민적 관심거리로 떠오른 모 기관의 국정감사를 지켜본 소감을 간단히 적어 봐야겠다.

어제는 하루 종일 채널을 돌려가며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국감실황을 놓치지 않고 시청했다. 이슈(Issue) 는 쟁점사안이라, 언론보도에 따르면 시청률이 10%가 넘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상대를 의식하지 않고 거침없이 쏟아내는 피감기관 대표의 사이다 발언 때문에 시청한 사람이 많았음을 증명해 준다. 나도 때로는 질의하는 국회의원의 입장이 되어보기도 하고 답변하는 기관장의 심경을 헤아려 보면서 흥미롭게 방송을 봤다.

서로 상반된 입장에서 묻고 답하는 여야의원들과 피감기관의 대표가 날리는 말 펀치를 듣고 있으니 만감이 교차했다. 후보자 인사청문회 때,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던 야당의원들이 이번에는 외려 그를 보호하기에 급급했고 반면, 칭찬일색으로 치켜세우던 여당의원들은 언제 봤느냐는 듯 안면몰수하고 공격 일변도로 다그치고 있다. 격세지감(隔世之感)이다. 축구 A매치도 아니고 화재를 불러일으킨 인기 드라마도 아닌, 딱딱하고 재미없는 국정감사에 왜, 이렇게 많은 국민들이 관심을 보이는지, 도무지 이해할 순 없지만 나라를 걱정하는 국민이 그 만큼 많다는 것으로 이해하고 싶다.

국감 중계를 보면서 떠오른 단어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다. 잘 나간다고 거드름을 피워봤자, 얼마 아니다. 메뚜기도 한 철이라는 얘기가 있다. 잘 나갈 때 더욱 조심하고 자신을 낮추어야 존경받는다. 한 때 청문회 스타로 급부상하며 뽐내던 사람들, 지금까지 그 자리에 남아 있는 사람, 어디 한 사람이라도 있는가? 빙글빙글 도는 회전의자도 언젠가는 물려주고 떠나야하는데, 나라를 걱정하고 국민을 위한답시고 고성을 지르고 윽박지르기도 하면서 호기를 부려본들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당리당략에 따라 갈대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며 논리에 맞지도 않는 스피커 볼륨만 키우다가 쓸쓸하게 무대 뒤로 사라지고 말뿐, 스스로 국민의 대표임을 자처하며 토설하는 그들에 맞서 싸우는 외로운 전사를 바라보며, 측은하다기 보다는 시원하다고 여긴 사람이 더 많았을 것이다. 죄인 취급하듯 다그치는 갑(甲)과 이에 질세라 맞받아치는 을(乙), 모두 머잖아 평범한 국민으로 돌아가게 될 게 번한데, 이들에게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과 권불십년(權不十年)에 대해 그 뜻을 설명해 주고 싶다.

사람은 누구나 때가 되면 죽는다. 자존심이 강하고 욕심 많은 사람일수록 화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한다. 유명세를 타거나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이 삶에 대한 애착이 더 많다. 하지만 영원히 살 수는 없다. 사람은 누구나 예외 없이 언젠가는 죽는다. 아무리 발버둥 쳐봐도 소용이 없다.

풍자와 독설로 한 시대를 풍미한 영국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1856-1950)가 죽기 전에 남긴 마지막 유머가 “우물쭈물 살다가 이렇게 끝날 줄 알았지”이다. 기인으로 살다간 중광 스님(1934-2002)은 “괜히 왔다 간다.”라고 했고, 조병화 시인은 ‘꿈의 귀향’이라는 짧은 시 한 편을 남겼다. “어머님 심부름으로 이 세상에 나왔다가 이제 어머님 심부름 다 마치고 어머님께 돌아 왔습니다.” 프랑스 작가 미셀 투르니애(1924-2016)는 “내 그대를 찬양했더니, 그대는 그 보다 백배나 많은 것을 내게 갚아주었도다. 고맙다, 나의 인생이여”, 오래되어도 맛이 변하지 않는 와인처럼 늙어가는 사람들도 있다. 얼마나 오래 사느냐 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더욱 중요하다. 마지막까지 청진기를 놓지 않고 봉사하다가 최근 세상을 떠난 한원주(1926-2020)박사가 남긴 한 마디는 거창하거나 화려하지 않다. “힘내라, 가을이다. 사랑해”였다. 그리고 김종필은 정치를 허업(虛業)이라고 했으며, 김윤환은 자기 호를 빈 배(虛舟)로 지었다. 허욕(虛慾)과 허세(虛勢)는 언제나 겸손(謙遜)에게 지게 마련이다. 위를 쳐다보지 않고 발끝만 내려다보고 걷는 스님의 걸음 거리에서 낮은 곳으로 임하는 진리를 터득해야겠다.

비사벌뉴스 bsb2718@hanmail.net

<저작권자 © 비사벌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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