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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과 상극의 갈림길에서-下

기사승인 2021.03.19  10:2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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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선열(인문학연구소 문심원 원장, 문학평론가)

예로부터 제방을 쌓는 일은 치수의 근본이었다. 중국 고대국가의 치수에 관한 이야기는 곤과 우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요임금의 신하였던 곤은 식양(息壤)이라는 신비한 흙으로 물길을 막고 쌓아서 치수를 하려고 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그 뒤를 이은 순임금의 신하 우는 아버지 곤의 정책과는 반대로 물길을 열어서 치수를 하면서 태평성대의 발판을 만들었다. 곤은 자연에 맞서는 치수의 방식을 선택했고, 우는 자연에 따르는 치수 방식을 선택했다. 이 이야기는 비록 오래된 과거에 일어난 신화와 같은 이야기지만 치수 정책은 국가 정책의 근본이라는 교훈을 남겨 주고 있다.

제방을 쌓아서 물길을 막는 일은 자연과 맞서는 치수의 방식이다. 자연스럽게 흐르는 물길을 막아서 치수를 하는 것은 그야말로 개발만이 인류가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던 근대적 사유방식이다, 진나라 시황제는 통일국가의 대업을 이루고 천하를 순례하면서 중국 전역에 흐르고 있는 물길을 다스리는 치수 정책을 시행했다. 시황제는 중국 전 지역을 가로지르고 있는 황하강과 양자강을 연결하는 대운하 공사를 시작하였으며, 두 강의 물길이 전국의 마을 곳곳으로 이어지게 하는 수로를 만들었다. 시황제의 치수 정책은 물길을 막는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곳곳에 물길을 열어주는 일을 한 것이었다. 중국 천하를 통일하고 도량형의 기준을 세우고 난 뒤 가장 역점을 두고 했던 일이 치수 사업이었다.

우리는 일제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물길을 막는 치수 사업만을 주도해왔다. 전국의 강에 제방을 설치하여 하천의 범람을 막았으며, 댐을 건설하여 물길을 가두었고, 강의 하구에는 수문을 만들어 강물이 빠져나가는 양을 조절했다. 최근에는 4대강 사업을 하면서 둔치를 개발하고 강물의 흐름을 조절하는 보를 만들었다. 이들은 모두 자연의 물길을 막는 치수 정책이었다. 지금 세계의 여러 나라들은 물길을 막는 치수 정책을 바꾸어서 물길을 열어가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뉴딜 정책 때 공공산업을 부흥하기 위해 난개발로 추진되었던 댐을 헐어내는 치수 사업을 하고 있으며, 유럽은 도심을 흐르는 강과 하천, 댐을 자연의 상태로 회복하는 복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가까운 일본에서도 거대한 자연 재해에 맞서는 길이 인간 중심의 개발이 아닌 친환경적인 개발이라는 자연의 방식에 따른 치수 사업으로 정책을 바꾸고 있다. 이런 세계적 추세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물길을 막는 치수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니 얼마나 한심한 노릇인가?

수억 년 동안 자연의 물길에 따라 만들어진 천혜의 자연 습지 우포늪은 일제 강점기 때부터 이루어졌던 제방 사업과 물막이 공사로 해서 그 넓었던 자연 습지가 좁아져서 현재는 원형을 알 수 없을 정도가 되고 말았다. 우포늪의 대대 제방 사업으로 그 일대의 농지는 넓어졌지만 자연 습지는 그만큼 사라진 것이다. 본래 하나였던 늪이 쪼개지면서 자연 습지의 기능은 사라지고 이와 동시에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던 생명들도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자연 습지가 사라지면서 인간이 경작할 수 있는 땅은 넓혀졌지만 결국에는 자연 생명체와 더불어 살아가는 공생의 삶은 버리고 말았다. 자연 습지가 제방 공사로 해서 농지로 변하면서 사람들이 경제적 풍요를 누렸을지는 몰라도 그만큼 후손들에게 물려 줄 자연의 풍요로운 자산은 잃고 말았던 것이다.

지난 2016년 낙동강하구 국제포럼에 토론자로 참석한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 참가한 국내 학자와 일본과 네덜란드의 학자들은 각 나라의 하굿둑 개방과 생태복원 사례를 소개했다. 그때 일본에서 참가한 발제자는 일본의 자연 친화적인 하굿둑 개발에 대한 사례를 소개했는데, 그 토론 자리에서 일본이 조선을 침략했을 때는 왜 그런 자연 친화적인 공법을 사용하지 않았는지를 질문했던 적이 있다. 지구촌이라는 말이 오고갈 정도로 국가와 국가의 경계가 사라진 지금, 적어도 환경과 자연 개발만큼은 내 나라 남의 나라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제 내남이 없는 무국경의 시대에 특정 지역의 개발은 지역만의 문제라고만 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근대화의 명목과 개발 정책이라는 허울 아래 한반도의 곳곳이 생채기로 몸살을 앓게 되었고, 그 근대화의 연장선상에서 한국형 경제개발 정책이 추진되면서 이 땅의 구석구석은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다. 지금까지도 물길을 막는 제방 공사가 멈추지 않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국제습지조약에서는 1997년, 그 해의 2월 2일을 세계습지의 날로 지정했다. 숫자 2가 겹치는 날을 더불어 살아가는 상생의 날로 생각하면서 그 숫자를 기념하기 위해 제정한 날이기도 하다. 상생은 공생과 공존을 함의하는 말이며, 더불어 살아가는 생명공동체를 뜻하는 말이다. 이 날을 즈음해서 창녕군에서는 람사르협약으로 보호받는 우포늪의 습지를 유네스코생물권보전지역(MAB, Man And Biosphere)으로 등재하기 위해서 신청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유네스코생물권보전지역은 사람과 생명이 더불어 살아가는 생명공동체를 의미한다. 세계습지의 날을 따로 지정한 것이나, 생물권보전지역으로 등재하려고 하는 것은 어떻든 공생 공존의 삶을 지향하려는 전 지구적 환경 보존과 맥락을 같이 하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창녕군에서는 유네스코생물권보전지역에 등재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으면서도 한 쪽에서는 대봉늪의 제방을 쌓고 있으니, 이 이율배반의 환경 정책을 어떻게 해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난해부터 여러 지역 환경단체뿐만 아니라 지역 언론 매체들이 대봉늪의 제방 공사에 대한 사업 중단을 촉구하고 있지만 창녕군에서는 지역민을 위해서 제방 공사를 추진하고 있으며, 이제는 완공 단계에 이르고 있다. 대봉늪의 현재 모습을 바라보면서 현재의 삶을 위한 치수 정책과 미래의 삶을 위한 환경 보존 정책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봉늪의 제방 사업은 현재의 삶만을 바라보고 살 것인가, 아니면 미래의 삶을 생각하면서 살 것인가라는 중요한 갈림길을 결정하는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지금의 현실을 바라보면서 보이는 현재의 삶만을 추구하는 근시안적 정책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인류의 미래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달려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길이야말로 풍요로운 자연의 생명과 생태를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는 사실을 절실하게 깨달아야 할 시점에 놓여 있다.

비사벌뉴스 bsb271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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