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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버들의 나라 ‘대봉늪’의 목숨을 살려주세요

기사승인 2021.04.29  14:3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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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한봉(시인)

지난 주말(4월 13일 토) 저는 경남 창녕군 장마면에 위치한 대봉늪이 파괴되는 참상을 보고 왔습니다. 그날 왕버들 군락지로 유명한 대봉늪 한 가운데서 포클레인을 비롯한 여러 종류의 중장비가 굉음을 내며 공사하는 것을 보면서 씁쓸한 마음을 가눌 길 없었습니다.

울창한 왕버들 수림 속을 걷다가 파헤쳐져 속살을 드러낸 끔찍한 늪의 상황을 보고서는 씁쓸함 정도를 넘어선 고통을 느꼈습니다. 보존하고 지켜나가야 할 늪을 파괴하는 현장은, 행정당국이 아직까지도 산업화시대의 개발 중심주의에 매몰된 퇴행적 정책을 구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혹은 선거를 의식해 성급하게 공사를 추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자아내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저는 그런 것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대봉늪 파괴 현장을 보고 제가 이런 글을 쓰게 된 것은 시의 힘은 승산이나 효율성의 유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전하고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것에 있다(서경식, 서은혜 역, 󰡔시의 힘󰡕, 현암사, 2015.)는 서경식의 주장이 퍼뜩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는 인생의 황금기라 할 30대 중후반부터 10년 가까이 창녕에 살며 시를 썼고, ‘우포늪시생명제’를 열어 우포늪을 문학적으로 승화시키려 힘썼습니다. 창녕에 살며 󰡔우포늪 왁새󰡕라는 시집을 펴냈고, 2008년에는 창녕군으로부터 ‘우포늪 홍보대사’ 위촉 패를 받았습니다.

지금은 여러 개인 사정으로 다른 지역에 이사 와서 살고 있지만 이와 같은 창녕 지역과 천혜의 자연 늪인 우포늪을 어찌 잊을 수 있겠으며, 작은 우포늪이라 해도 모자람 없는 대봉늪이 훼손되고 파괴되는 모습을 어찌 그냥 보고 있을 수만 있겠습니까.

제가 대봉늪을 방문했을 때 대봉마을 입구에서는 공사 중이라며 출입을 통제했습니다. 그래서 대성마을 입구 다리 건너 둑길을 걸어 대봉 늪으로 갔습니다.

그곳에는 ‘대야 자연재해위험개선지구 정비사업’이라는 공사명이 적힌 입간판이 서 있었습니다. 그 너머로 펼쳐진 4월 대봉 늪은 온통 신록으로 가득했습니다. 걸어가면서 보니 왕버들숲은 한창 물이 올라 봄빛에 눈이 부시게 황홀경을 펼쳐내고 있었습니다.

갈수기라 그런지 늪 바닥은 싱싱한 풀들이 자라 수천 폭 초록 비단을 깔아놓은 듯했습니다. 흰제비꽃과 애기똥풀, 냉이꽃, 쇠뜨기, 하얀 민들레꽃을 비롯해 제가 미처 이름을 알지 못하는 여러 풀꽃들이 봄 잔치를 펼치고 있었습니다.

나무 위에서는 직박구리가 그 봄 잔치에 신명을 풀어놓았습니다. 풀숲에서 고라니 한 쌍이 달려가는 모습과 만난 순간에는 정말 온몸에서 희열이 솟구쳐 꼼짝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뒤 길이 뚝 끊어졌고, 늪을 파헤친 현장이 나타났습니다.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자연의 신비가 제 몸의 한 부분을 잃고 신음하는 현장이었습니다. 웅웅거리는 기계소리에 파묻혀 새의 노래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습니다.

달려가던 고라니도 놀라서 어딘가에 숨었을 것입니다. 끊어진 길 아래로 이어진 수로에는 공사장에서 흘러나온 흙탕물에 음료 페트병을 비롯한 여러 쓰레기가 둥둥 떠 있었습니다.

람사르습지 도시로 지정된 창녕군이 생태적 가치가 높은 소중한 습지를 이처럼 무참하게 훼손하는 공사를 벌인다는 것이 납득되지 않아 저는 한참동안 떨어지지 않는 발길 때문에 대봉 늪을 쉽게 돌아 나오지 못했습니다.

계성천이 흐르면서 형성된 대봉 늪은 4만5천㎡의 면적에 왕버들이 빽빽하게 군락을 이루고 있어 ‘왕버들의 나라’라 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번개늪, 장척 늪과 인접해 있고, 낙동강 배후 습지로써 수생식물은 물론 어류도 풍부해 수달이나 삵, 고니, 황조롱이, 직박구리 등 여러 생명체들이 어울려 서식하기에 더없이 좋은 생태적 상태를 유지하고 있음을 저는 확인했습니다.

이처럼 중요하고 아름다운 늪을 훼손하고 파괴하는 공사를 벌이는 것은 세계적인 비웃음을 자초하는 일입니다.

늪은 생명의 자궁입니다. 생명이 만들어지고 태어나는 곳이며, 생명이 번성하는 생태계의 천국입니다. 늪의 축축한 땅은 곤충과 수생식물들이 살기에 더없이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풍부한 먹이 순환구조가 발달해있고, 은신하기 좋은 장소가 많아 동식물에게는 안식처이기도 합니다. 노자가 도덕경에서 말한 곡신불사의 현빈(영원히 죽지 않는 골짜기의 여신)이 사는 곳도 바로 이러한 곳입니다. 그래서 늪은 생명의 자궁이요, 생명의 보배로운 안식처인 것입니다.

늪은 지구의 신장이고 숲은 지구의 허파입니다. 늪은 물이 가진 여러 유기물을 걸러 정화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대봉 늪은 왕버들 군락 숲이 있어서 맑은 공기를 쉼 없이 뿜어냅니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우리 사는 세상은 온갖 오염물질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토양과 물, 공기까지도 오염되어 안심하고 살 수 없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채소 하나도 마음대로 가꾸어 먹을 수 없습니다.

물도 사 먹어야 하고, 하늘에는 미세먼지가 뒤덮여 숨쉬기도 쉽지 않습니다. 언제부터 우리가 이런 어려움, 이런 고통을 겪게 되었습니까. 오늘날 문명사회에서는 이것을 당연한 일로 치부합니다. 당연하게 여기지 않아야 될 일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일이야 말로 정말 큰 불행입니다.

그래서 더욱 대봉 늪과 같이 온전하게 살아있는 자연생태의 현장을 보존하고 지켜나가야 합니다. 늪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 자연입니다. 대봉 늪의 주인도 인간이 아니고 자연입니다.

대봉 늪은 규모나 그 역할에 있어서 결코 세계적인 습지로 널리 알려진 우포늪에 비해 뒤지지 않습니다. 저는 재해위험개선을 하려는 것에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생태를 살피지 않는 난개발로 대봉 늪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늪의 한 부분을 잘라내고 파괴하는 것은 사람으로 친다면 사람의 몸 한 부분을 잘라내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한 번 파괴된 자연생태는 수백 수천 배의 노력으로도 되돌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늦지 않습니다. 창녕군은 대봉늪 정비 사업을 멈추고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당장 눈앞의 이익을 따진다면 정책을 만들고 시행하는 행정 당국, 그리고 자본이라는 거대 권력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자연 역시도 기술을 가진 인간 앞에 무참하게 죽어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인간의 건강한 미래, 자연생태계의 건강한 미래를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대봉늪을 지키고 살리는 일은 미래 사회의 주인공이 될 우리 후손들에게 희망을 주는 일입니다.

자본주의나 행정당국이 추구하는 효율성이나 승산 여부가 우선이 아니라 미래에 남는 역사의식을 가지는 일입니다.

그래서 호소합니다. 창녕군은 공사를 멈추어 주십시오. 제대로 된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고, 세계적 습지도시로서의 면모를 재확인해주기 바랍니다.

사회단체 관계자 여러분, 국민 여러분! 창녕군에 대봉늪을 훼손하고 파괴하는 공사를 중지하고 대봉늪 보존대책을 세울 것을 요청해주십시오.

대봉늪은 지금 목숨을 위협받으며 신음하고 있습니다. 왕버들의 나라인 대봉늪의 목숨을 살려주십시오.

감사합니다.

▲ 배한봉(裵漢奉) : 시인, 문학박사. 1998년 󰡔현대시󰡕 신인상 등단. 시집 󰡔주남지의 새들󰡕, 󰡔잠을 두드리는 물의 노래󰡕, 󰡔악기점󰡕, 󰡔우포늪 왁새󰡕, 󰡔흑조(黑鳥)󰡕 등. 산문집 󰡔우포늪, 생명과 희망과 미래󰡕 󰡔당신과 나의 숨결󰡕 등. 현대시작품상, 소월시문학상 대상, 아름다운농촌시 농림부장관패, 김달진창원문학상, 경남문학상 등 수상. 고등학교 문학교과서에 시 「우포늪 왁새」 수록. 추계예술대학교 객원교수. 한국시인협회 상임위원. 󰡔시를사랑하는사람들󰡕 공동주간.

비사벌뉴스 bsb271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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