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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령天嶺 기행

기사승인 2021.05.08  09: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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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일(수필가, 부산지역방송발전위원회 위원장)

5월이 신록新綠의 계절이라면 4월은 연록軟綠의 계절이다. 마른가지에 꽃을 피우고 새순이 돋아나는 생동의 절기이기 때문이다. 만물이 움트고 소생하는 대자연의 경이로운 모습을 보지 않겠느냐는 C선배의 요청에 기분전환을 할 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첫 목적지는 우거진 숲으로 유명한 함양상림上林이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호젓한 농촌 길을 달렸다. 의령과 산청을 거쳐 함양으로 가는 길은 초행인데도 왠지 낯설지가 않았다.

천 년 전에 조성했다는 인공조림지 상림上林(1)에 도착했다. 120여 종의 빼곡한 활엽수가 뿜어내는 피톤치드Phytoncide를 마음껏 들여 마시며 미세먼지와 황사로 찌든 허파를 정화하고 보리밭 길을 따라 빛바랜 옛 추억을 소환해냈다.

천령태수天嶺太守 최치원孤雲 崔致遠(887-897)이 마을과 농경지 보호를 위해, 동네를 가로지르는 위천강에 둑을 쌓고 물길을 돌려 조성한 대관림大館林, 그때 만든 제방과 숲 덕분에 홍수걱정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오랜 세월을 지나는 동안 강이 범람해 숲의 일부가 유실되고 훼손되어 상림과 하림으로 나뉘어졌지만 지금도 여전히 지역민의 훌륭한 쉼터로 사랑받고 있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숲속을 거닐다가 시장기를 느껴 갈비탕으로 점심요기를 하고 용추계곡으로 향했다. 안의安義는 조선후기까지 안음현安陰縣의 현청이 있던 곳이라 함양과 거창을 아우르는 행정의 중심지다. 소를 사육하는 농가가 많아서 그런지, 옛날부터 경상좌도에서는 갈비탕의 고장으로도 유명한 곳이란다.

덕유산 자락의 기백산은 빼어난 절경으로 “안의삼동安義三洞”을 품었다. 그 중 으뜸은 ‘심진동’ 계곡이다. 마음까지 맑아진다는 ‘청신담’에 풍덩 빠져들고 싶었지만 자제하고, 넓고 평평한 화강암 위로 흐르는 맑은 시냇물에 손을 담가 봤다. 시릴 만큼 차갑다. 금원산에서 발원해 지우천이 되고 남강을 이룬 뒤, 낙동강을 만나 큰물 되어 남해로 흘러들어간다. 용추계곡을 따라 신라의 고찰 ‘장수사’의 흔적을 찾았지만 외롭게 서있는 일주문이 절터였음을 말해줄 뿐. 용추사에서 허한 가슴달래고 장엄한 폭포소리에 이끌려 찾은 곳은 용추폭포. 용틀임하며 깊은 웅덩이로 떨어지는 물기둥이 사방 천지에 물보라를 일으키며 자맥질한다. 장관壯觀이다.

나들이 나온 아낙네들에게 사진 찍어주느라 정신 줄을 놓은 P아우를 재촉해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남계서원藍溪書院은 동방 5현(2) 중 한 분인 조선 초기 성리학자 정여창一蠹 鄭汝昌, 1450-1504선생을 배향한, 영주 소수서원에 이어 두 번째 사액(3)을 받은 서원이다. 선생은 함양에서 나고 묻힌 대학자로 벼슬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학문탐구에만 열정을 쏟은 분이다. 성리학性理學의 아버지,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이며 김굉필金宏弼 등과 수학했다. 그의 스승 김종직이 쓴 조의제문弔義帝文(4)을 사초史草에 실은 게 화근이 되어, 죽임을 당한 김일손金馹孫의 학우란 이유로 함경도 종성으로 유배되어 거기서 숨졌다. 선생의 문헌은 무오사화戊午士禍 때 소실되어 남아 있지 않으며, 후학 정구鄭逑가 엮은 〈문헌공 실기 文獻公實記>에 일부가 소개될 뿐이다. 현재 남계서원은 유네스코가 선정한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어 관리되고 있다.(5)

그 밖에도 청동기 유적지를 비롯한 신라와 백제문화를 이해하게 하는 불상과 석탑에서 불교예술의 진수를 엿볼 수 있고 근대교육기관인 향교와 서원 및 농월정弄月亭 등 곳곳에 세워진 정자와 누각에서 유교의 향취를 느낄 수 있다. 또, 함양天嶺이 삼국시대 최대의 격전지였음을 말해주는 산성과 토성도 여태 남아 있다. C형이 다음에는 2-3일 여유를 가지고 돌아보자고 한 것과 옛 선비들이 右안동 左함양이라고 했던 말도 여행을 통해 이해하게 되었다. 아쉽지만 주마간산走馬看山격의 당일치기 천령기행을 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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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함양상림咸陽上林 : 천연기념물 제154호, 신라 진성왕 때 天嶺太守(現함양군수)를 지낸

최치원孤雲 崔致遠 선생이 홍수방지를 위해 조성한 인공조림지

(2) 동방5현東方五賢 : 조선을 대표한 5분의 현인賢人 정여창, 김굉필, 이언적, 조광조, 이황

(3) 사액서원賜額書院 : 특별히 조정에서 서원의 명칭을 부여해 현판과 그에 따른 서적, 노비 등의 특전을 부여한 국가공인 서원을 말함, 영주 소수서원이 1호 사액서원임.

(4) 조의제문弔義帝文 : 조선 성종 때의 유학자 김종직이 수양대군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한 것을 빗대어, 중국 전국시대 항우項羽가 의제義帝를 죽인 것으로 기술한 글

(5) 유네스코 선정 한국의 서원 : 한국의 주요 서원이 2019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됨.

소수서원(영주), 남계서원(함양), 옥산서원(경주), 도산서원(안동), 필암서원(장성),

도동서원(달성), 병산서원(안동), 무성서원(정읍), 돈암서원(논산) 총 9개 서원.

비사벌뉴스 bsb2718@hanmail.net

<저작권자 © 비사벌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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