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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식문화관광해설사의 숨겨진 문화재를 찾아서

기사승인 2022.10.27  16:2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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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江, 그리고 昌寧의 물길-Ⅶ, 망우정(忘憂亭)과 곽재우 의병장

 

고려 말 정몽주, 이숭인, 정도전, 길재등 성리학자들은 조선이 개국되는 과정에서 전혀 다른 길을 걷는다. 정몽주와 이숭인은 죽임을 당했고, 정도전은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개국했으며 길재는 낙향하여 후학을 양성한다.

훈구파(勳舊派)는 조선개국을 도운 공신들을 말하며, 사림파(士林派)는 고려왕조에 절의를 지키며 낙향하여 지방에서 세력을 키운 선비들을 말한다.

 

구미선산에서 후학을 길러낸 야은 길재(冶隱 吉再)에서 시작된 영남사림은 강호 김숙자, 점필재 김종직, 한훤당 김굉필, 일두 정여창, 탁영 김일손, 정암 조광조로 이어진다. 15세기에 조선 9대 성종(1457~1495)은 훈구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사림세력을 등용한다. 사림의 성장을 필연적으로 훈구세력과 극심하게 대립한다.

중앙에 관료에 진출한 사림은 4대사화(四大士禍)를 겪으며 수많은 선비들이 사약을 받거나 귀양을 갔다. 그 과정에서 선비들이 사화를 피해 또는 정치에 염증을 느껴 강변에 정자를 짓고 음풍농월하며 유유자적한 삶을 택했다.

 

무오사화를 피해 김굉필과 정여창의 달성군 구지면 이노정, 기묘사화를 피해 하부, 하관, 하홍의 이방면 등림리 어부정, 서궁의 변에 연루된 스승 동계 정온이 귀양 가자 낙향한 양훤의 남지읍 시남리 오여정, 임란후 벼슬을 버리고 신선의 삶을 살다간 곽재우의 도천면 우강리 망우정, 정유재란과 병자호란 때 의병활동을 하다 강변에 은거한 이도일의 소우정은 격랑의 시대를 살다간 영남사림 선비들의 살아있는 역사현장이다.

 

망우정(忘憂亭)

곽재우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이수광(1563(명종 18)~1628(인조 6) 12)지봉유설(芝峯類說)」 인물 편에는 조선시대 2대 명장이 소개된다.

2대 명장이란 바로 이순신과 곽재우다. 그만큼 곽재우는 훌륭한 인물이었지만 이순신 장군에 비해 평가절하 되고 있다.

전쟁 후 국난극복의 유공자를 가리는 논공행상(論功行賞)에 선무공신(宣武功臣, 18)에 오르지 못하고 그보다 훨씬 못한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9,060) 명단에 겨우 오른다.

어찌 보면 이순신장군은 국록(國祿)을 받는 장수(직업군인)로 당연히 나라를 위해 싸워야 했지만 곽재우는 관직(官職)이 없는 백성으로 사재(私財)를 털어 의로운 의병(義兵)을 일으켜 큰 공을 세웠으니 그 위대함은 훨씬 크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후 최초로 의병을 일으켜 8도에서 의병이 들불처럼 일어나게 했으니 어떠한 칭송도 아깝지 않다.  

의병전쟁의 활약뿐 아니라 학자적 자질과 선비의 절의, 청렴함을 동시에 지닌 특이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곽재우는 1552828일 의령군 유곡면 세간리 외가에서 태어났다. 남명 조식 선생 밑에서 성리학을 배웠고, 사람 됨됨이를 일찍이 간파한 조식선생이 외손녀 사위로 삼았다.

곽재우는 관운(官運)과는 거리가 멀었다. 1585년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글귀가 선조의 뜻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합격이 취소된. 이에 과거를 포기하고 고향에 내려와 강변에 정자를 짓고 살았다.

1592413일 왜가 조선을 침략하는 임진왜란이 일으난지 9일 만에 고향 유곡면 세간리 느티나무에 북을 걸고 의병을 모집하여 군사를 일으킨다. 탁월한 전략전술로 육전(陸戰) 최초의 승리 기강전투, 정암진 전투에서 연전연승한다.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보급선 22척을 분멸하는 등 혁혁한 전과를 올린다.

낙동강과 남강 물길을 지키며 적의 보급선과 전라도 길목을 봉쇄하며 현풍, 창녕, 영산일대의 왜적을 몰아내며 맹활약하였다.

 

임진정유재란을 끝나고 여러 번 선조의 부름을 받았다. 그러나 여러 핑계를 대며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  

7년 전란기간 중 김덕령의병대장이 이몽학의 난에 연루되었다는 누명을 쓰고 혹독한 고문으로 억울하게 죽었다. 또 정유재란 때는 이순신장군을 고문하고 백의종군시킨다. 그런 선조를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의심이 많고 열등감이 있었던 선조와 험한 조정 대신들의 권력암투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 근심 걱정을 잊는다는 뜻의 망우(忘憂)는 그의 삶을 관통하는 말이다. 머리 아픈 정치와는 인연을 끊겠다는 말인 것이다.

곽재우의 일생을 되돌아보면, 선조와 광해군까지 무려 29차례에 걸친 사직과 직언으로 임금의 눈 밖에 나면서 귀양살이 까지 한다. 올곧은 선비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그런 그를 보고 세상 사람들은 신선(神仙)이되어 홀연히 사라졌다는 말로 칭송과 존경을 표한 것이리라…….

 

망우정(忘憂亭)과 여현정(與賢亭)

곽재우는 선조(宣祖) 33(1600) 봄 병을 이유로 경상좌도병마절도사를 사직했다. 이 때문에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전라도 영암에 2년 동안 유배되었다.

그 후 현풍 비슬산에 은둔하다가 1602년 옛 영산현 창암진 강가 언덕에 정자를 지어 살았다. 1617년에 죽으니 망우정에서 15년을 살았다. 살아생전 수많은 선비들이 찾았고 1607년 용화산 뱃놀이 때는 한강 정구, 여현 장형광등 영남사림 35명의 선비들이 시문을 논했다. 거문고를 타고 낚시를 하며 솔잎으로 연명하여 신선처럼 살았다고 전한다.
슬하에 두 아들과 다섯 손자가 있었으나 정자를 어진 사람 여현 이도순(與賢 李道純, 1585~1625)에게 물려주었다.

개인이 아닌 사림들의 공간으로 남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이 이도순이 일찍 죽고 정자를 관리하는 사람이 없어 황폐해져다.

곽재우가 죽고 18년 후인 1635년 간송당 조임도가 신산서원(산해관)으로 가다 망우정에 들렀을 때 주인을 잃고 방치되어 있었다.  보다 못한 서자 곽탄이 근처에 살면서 관리하였다. 망우정은 곽재우의 사망 이후 채 20년이 되지 않아 황패해졌고, 17세기 후반에 그 터만 남게 된다.

고을 유림들이 1789(정조 13)에 망우당유허비를 세웠으니 그 시기 전후로

정자는 다시 지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정면 3칸 팔작집은 한국전쟁 때 불타고 1972년 벽진 이 씨 후손들이 다시 짓고 창녕군에서 보수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옛님은 가고 풍광도 바뀌었지만 백세청풍 그 선비의 향기는 면면이 이어졌으면 한다. 혹 답사하는 길이 있으면 마당의 잡초를 뽑고 마루의 먼지를 털었으면 한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영웅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니겠는가 ?

 

망우당 곽재우와 한강 정구

한강 정구와 1607년 용화산동범 때 망우정에서 하룻밤을 같이 보냈다. 1617년에는 한강 정구가 요양차 부산 동래온천으로 간 봉산욕행 때 배를 타고 망우정 앞을 지나갔다. 그 때 이미 곽재우는 죽고 상중(喪中)이었다.

충의대절의 상징이면서도 결코 순탄치 않은 만년을 보냈던 곽재우의 삶에 비감을 느낀 일행은 술잔을 기울이며 감회를 토로하게 된다. 이에 신지제노극홍이윤우이서이천봉이후경이도자노해이육 등 수행인원 대부분이 시를 지어 저마다의 심경을 표현했다.

 

이후경(李厚慶)

가을비 막 개이자 강물은 모래톱에 가득차고 秋雨初晴水滿沙

목란으로 만든 배 노를 저어 석양물결에 그치네 蘭舟棹罷夕陽波

물 가운데서 문득 흉금이 상쾌해짐을 깨달으니 中流頓覺胸襟爽

도도한 맑은 흥취는 내 분수 밖의 일이네 淸興陶陶分外多

 

그러나 정작 한강 정구는 망우정을 지나면서도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남명문하의 동문이었고, 용화산 선유(뱃놀이)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등 관계가 좋았다. 그럼에도 정구는 16174월 그가 사망했을 때 만사(輓詞)를 지어 조문하지 않았다. 그리고 상중에 많은 선비를 만나고 술을 기울이며 동래온천에 요양을 갔다.

그것은 아마 임해군옥사에 대한 입장 차이로 사이가 틀어진 것으로 보인다.

용화동범 다음 해(1608) 곽재우는 부호군을 사직하는 상소에 임해군(臨海君)의 옥사에 대해 전은론(全恩論)의 부당성을 강하게 지적했다.

전언론은 광해군 형님 임해군을 완전한 은혜를 베풀어 살려주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강 정구는 전은론을 옹호하여 두 사람은 정치적 대척점(對蹠點)에 섰던 것이다.

비사벌뉴스 bsb271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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