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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1300리 누각과 정자 이야기(9회)

기사승인 2023.05.25  19: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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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주시 군자정과 오계서원 그리고 일우정

소백산에 깃든 선비의 숨결, 영주시 누정-2

군자정과 오계서원 그리고 일우정

 

오종식 창녕군 문화관광해설사

담양 송순(1493~1582)은 면앙정(俛仰亭)을 짓고 “풍월(風月)은 불러들이고 산천(山川)은 끌어당겨 명아주 지팡이 집고가며 한평생 보내리라.”고 노래했다.

바람과 달 별은 정자로 불러들이고, 산과 하천 숲을 끌어당겨 자연에 동화되어 아무것에도 매이지 않고 자유로우며 편안하게 살아가겠다는 것이다.

명아주는 1년생 식물로 어린순은 나물로 먹는데 옛날에 지팡이 재료로 사용했다. 다 자란 명아주를 손질하여 지팡이로 만들면 오래된 나무처럼 가볍고 단단하여 이 지팡이를 청려장(靑藜杖)이라 불렀다.

○ 군자정(君子亭)

퇴계 이황이 아끼던 제자 간재(艮齋) 이덕홍을 기리는 영주 군자정

하천가 겨우 승용차 한 대가 갈 수 있는 좁은 길을 따라 500여 미터 들어가면 키 큰 소나무, 느티나무 숲이 반겨준다. 정자 앞으로 내성천 지류 토일천이 흐른다. 화강암 지대라 맑은 모래 샛강이다.

군자정은 한적한 산 아래 조용히 자리 잡고 있다.

낮은 구릉 가운데로 길이 나 있고 오른쪽에 군자정, 왼쪽에 오계서원이 한 폭의 그림이다. 후손들 정성스럽게 보살핀 흔적들이 고스란히 보인다.

잘 생긴 버드나무 아래에 잠시 앉아 눈에 들어오는 먼 풍경을 감상하는 게 순서다.

눈 맛으로 즐기는 것이다. 전체를 담을 사진 한 장 찍는 것도 좋다.

준비해온 차 한 잔 마시며 조용히 주변 환경과 동화되어 가보자.

답사할 때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낯선 환경에 오면 잘 보이지 않는다. 잠시 한숨을 돌리고 가만히 앉아 주변 환경과 눈을 맞추어야 한다.

토일천 언덕에 왕버들과 느티나무숲이 좋다.

옮겨 심은 소나무와 축대 위 느릅나무, 단풍나무 등이 오른편 산자락의 소나무 숲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군자정은 경북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조선 시대 정자다.

정자는 단순하고 실용적인 구조로 되어 있다. 추운 지방이라 탁 트인 개방적인 구조보다 대청마루에도 문을 달아 추위에 대비했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 홑처마 팔작지붕 기와집이다.

왼쪽 2칸은 통으로 된 마루방, 오른쪽 1칸 온돌방이 있다. 자연석 축대를 쌓아 기둥을 세웠고, 온돌방 쪽은 4각 기둥, 마루방 쪽은 둥근 기둥이다.

앞에는 쪽마루를 둘렀고 난간이 설치했다. 마루방은 3면이 송판 벽이다.

정자 앞 연못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천원지방. 天圓地方)라는 논리다.

원래 군자당이라는 연못만 있었다. 이덕홍(李德弘:1541∼1596)이 죽고 168년 후 1764년(영주 40) 지역 선비들이 선생을 기리기 위해 뜻을 모아 세웠다.

이름은 군자를 상징하는 연꽃을 심은 뜻의 군자당(君子塘)에서 유래되었다.

이덕홍은 영천(永川) 이 씨로 예안(禮安, 현 안동시 예안면)에서 태어났다.

호는 간재(艮齋)이다.

퇴계 이황의 제자로 역학(易學, 주역)에 뛰어났다.

1578년(선조 11) 현량과에 급제하여 집경전참봉(集慶殿參奉), 세자익위사부수(世子翊衛司副率)·종묘서직장(宗廟署直長)을 지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세자를 호종(扈從, 임금의 마차나 가마를 모시고 따라가는 것)했다.

이때 상소문에 귀갑선도(龜甲船圖, 거북선 도면)를 첨부하여 바다에서는 귀갑선(龜甲船, 거북선)을, 육지에서는 귀갑거(龜甲車)를 사용할 것을 건의했다.

다음 해에 영춘현감에 부임해 임진왜란 중에 굶주리는 백성 구제에 노력했다.

○ 오계서원(汚溪書院)

오계서원은 1570년(선조 3)에 이덕홍이 세운 오계정사(迃溪精舍)가 임진왜란 때 무너지자 다시 세워 오계서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1665(현종 6)에 이덕홍의 위패를 봉안하고 사당을 세웠다. 1699년과 1707년의 큰 대홍수로 서원이 피해를 보아 현 위치로 옮겼다. 고종 때 서원철폐령(1868)에 없어졌다. 일제강점기 1919년에 복원됐다.

○ 일우정(逸愚亭)

일우정이 있는 무수촌 입구에 된장 마을 무수 촌이란 커다란 바위에 새긴 글씨가 기품이 있다. 다리 건너 무수촌 입구 오른편 소나무숲 경관이 뛰어나다.

한눈에 예사롭지 않은 선비의 품격이 스며있는 듯하다.

마을 길을 지나 무수촌 된장마을 마당에 된장이 익는 장독대를 보는 맛이 좋다.

정자는 1868년에 건립한 정자로 우엄(愚广) 전규병(全奎炳,1840~1905)이 세운 정자다.

1866년에 연못을 파고 바위에 "일우대(逸愚臺)"를 조각했다. 2년 후 정자를 짓고 계당(溪堂) 류주목(柳疇睦)에게 부탁하여 "일우정"이라 지었다는 문헌 기록이 남아 있다.

정자와 연못, 금석문과 편액 등의 유적을 통해 조선 말 선비가 꾸민 유적을 연구하는데 필요한 문헌 자료가 함께 보존되어 있다.

정면 3칸, 측면 1.5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가운데 2칸 방을 중심으로 우측에 반 칸 마루를 설치했다. 좌측 반 칸은 나누어 앞 공간에는 위패를 모실 수 있는 작은 사당이 있는 점이 특징이다.

아쉬운 것은 일우정에는 사람이 살고 있어 물건이 뒤섞여 전체적으로 정리정돈이 안 된 상태이다.

네모기둥이 누마루와 난간이 둘려 있다. 누마루에 잡동사니들이 많이 쌓여있다.

일우정이 있는 무수촌마을 입구는 마을 숲이 일부 남아 있다. 잘 생긴 소나무숲이 마을을 감싸고 있어 답사의 또 다른 볼거리다.

 

비사벌뉴스 bsb271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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