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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1,300리 누각과 정자 이야기(19회)

기사승인 2024.02.06  08: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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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동시 풍산읍 소산마을의 삼구정과 안동김씨

글, 사진 오종식 창녕군 문화관광해설사

안동김씨 집성촌 풍산읍 소산마을
늙은 어머니의 장수를 위한 삼구정
길안면 묵계마을 김계행의 만휴정

소산마을 전경

안동시에서 풍산읍(옛 풍상 현)으로 길을 잡는다. 서애류성룡선생 묘소, 예안이씨 충효당 안내판이 나오고 곧 도로 오른쪽에 체화정이 보인다. 풍산읍이다. 점심때가 되었다면 풍산시장에 들려 밥을 먹고 가면 좋다. 읍을 벗어나면 안동한지 체험장을 지나면 곧 소산마을에 닿는다.

소산마을 입구 표지판

○ 옛 풍상 현 소산(素山)마을
김상헌의 청원루, 삼구정, 안동김씨 대종택 양소당, 김용추 종택 삼소재, 묵재고택, 안동김씨 19세손 김중안의 동야고택, 김산근의 비안공구택

소산마을은 안동 김씨들이 400여 년 동안 살아오는 마을이다. 옛날에 금산촌(金山村)이라 불렀다. 
병자호란(1636년) 후 청음 김상헌(淸陰 金尙憲) 선생이 고향에 내려왔다. 김 씨가 모여 사는 금산촌(金山村)은 이름이 화려하여 안동 김씨들의 청빈(淸貧)하고 검소(儉素)한 삶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소산(素山)이 고쳤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마을 뒷산이 소요산(素耀山)이다. 
빛날 耀(요) 자를 떼고 소산(素山)이라 고쳤다. 희고 깨끗하며 산에 둘러싸인 마을이라는 소박한 의미다. (자료출처 : 안동시청)

안동김씨 종택 양소당

○ 안동 김씨의 번창
소산마을은 안동 김씨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다. 
김선평을 시조로 안동에서 1,000년을 살았는데 9세손 비안현감 김삼근(金三近)이 이곳으로 이사 오면서 마을의 역사가 시작됐다.
김삼근은 첫째 아들은 한성판관 김계권, 둘째 아들은 대사헌을 지낸 보백당 김계행이다. (길안면 만휴당)
김계권은 다섯 아들을 뒀다. 첫째가 대장경을 간행한 명승 학조대사, 둘째 아들 김영전은 사헌부 감찰, 셋째 김영균은 진사, 넷째 김영추는 수원부사, 다섯째 김영수는 사헌부 장령을 지냈다. 
김계권의 다섯째 아들 김영수는 세 아들을 뒀다. 첫째 김영 문과급제, 둘째 김번이 평양서윤 지냈다. 
김번의 후손들이 파죽지세로 번창했다. 김상용, 김상헌에 이어 그의 손자와 증손자가 영의정 대사간 등 높은 벼슬을 했다. 이른바 그것을 압축하는 표현은 ‘삼수육창(三壽六昌)’이다. 
손자 ‘수’ 항렬 3명과 증손자 ‘창’ 자 항렬 6명을 말한다. 이 계보는 조선시대 안동김씨 세도정치의 기반을 마련한 김조순까지 이어진다.
조선 후기 김조순이 세도정치(勢道政治)의 중심에서 그의 후손은 13명의 재상과 수십 명의 판서, 참판이 배출되었다. 3명의 왕비(순조비, 헌종비, 철종비)와 숙종의 후궁 영빈 김 씨가 모두 그의 후손이다.

동오 언덕 삼구정

○ 소산마을 삼구정(三龜亭)
풍산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풍경, 오래된 소나무 느티나무가 아름다운 풍경

삼구정은 안동시 풍산읍 소산마을에 있다. 마을 앞을 흐르는 신역천과 작은 지류가 합류하는 곳에 생긴 작은 동산에 우뚝 서 있다.
사방이 탁 트인 정자는 앞면 3칸, 옆면 2칸이다. 여러 차례 고쳤고, 1947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고쳤다.
김계권의 아들 김영전, 김영추, 김영수 삼 형제가 88세 어머니(예천권씨)를 위해 마을 입구의 나지막한 언덕, 동오(東吳) 동산에 1496년에 세운 정자다. 늙은 어머니의 장수를 빌며 세웠다.
어머니는 여름이 되면 언덕에 올라 쉬곤 했는데 그곳에 정자를 세웠다. 
정자는 담장을 둘렀는데 입구를 들어서면 왼쪽에 3개의 거북 모양의 바위가 나란히 누워있다. 삼구정(三龜亭)은 이 바위에서 유래되었다. 바위를 거북으로 본 것은 십장생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 바위는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로 추정하기도 한다. 

거북바위와 소산마을사람들

정자를 세운 아들들은 명절과 기쁜 날에 어머니를 가마를 지고 정자에 올랐다. 형형색색의 색동옷을 입고 어머니를 기쁘게 했다고 한다. 
춘추전국시대 노래자(老萊子)는 효성이 지극해 90세가 넘은 부모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 70세가 되어서도 색동저고리를 입고 재롱을 부리고 넘어지면 어린아이처럼 어리광 부리며 울곤 해 부모님이 나이 드심을 느끼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삼 형제는 노래자의 효성을 본받았다. 

나지막한 언덕 위에 있지만 사방이 탁 트여 소산마을과 풍산들을 한눈에 내려 볼 수 있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 여름을 나기에 그만이다. 7월에 삼구정을 찾았는데 마을 주민들이 여럿이 부채를 들고 피서를 즐기고 있었다. 옛 풍습이 남아 있는지 남녀가 멀찍이 떨어져 앉아 있었다.
오래된 느티나무, 팽나무, 소나무 숲이 정자의 품격을 더해주고 있다. 언덕 아래에는 동산을 만들어 연꽃을 심은 둥근 연못이 조성돼 있다.

삼구정의 가을풍경

정자 안은 조선의 내로라하는 문장가들의 기문과 시문이 가득하다. 기문은 용재(慵齋) 성현(成俔)이 썼다. 그의 다른 호는 허백당이다.
풍산현은 안동부의 속현으로 고을 서쪽 5리쯤에 ‘금산(金山)’이라는 마을이 있고 그 금산 마을 동쪽 20보쯤에 ‘동오(東吳)’라는 봉우리가 있는데, 높이는 예닐곱 길밖에 안 되지만 그 꼭대기에 정자가 걸터앉아 있다. 동쪽·서쪽·남쪽은 모두 넓은 들판으로 형세가 시원하게 트여 있어 전망이 끝없이 펼쳐진다.”라고 썼다. 

김상헌의 청원루

병자호란 때 청나라와 끝까지 싸울 것을 주장한 김상헌은 병자호란이 끝난 후 고향에 돌아와 김번의 옛집을 누각으로 고치고 청나라를 멀리한다는 뜻으로 청원루(淸遠樓)라 이름 지었다. 김상헌은 절개와 지조의 상징이다,

만휴정의 여름 풍경

○ 안동 만휴정(晩休亭)
미스터 선샤인 촬영지로 청춘남녀들의 인기 폭발
경북 안동시 길안면 묵계하리길 42, 경북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정자는 앞면 3칸, 옆면 2칸, 2층 누각형 기와집이다. 앞쪽 3칸은 3면이 트인 누마루로, 둥근 기둥과 마루 주위로 난간을 세웠다. 뒷면 양쪽에 온돌방을 만들어 공부방으로 이용했다.

만휴정은 옛 풍산현 소산마을 출신인 보백당 김계행(寶白堂 金係行, 1431~1517)이 벼슬에 물러나 연산군 6(1500년)에 지은 정자다. 
김계행 선생은 청백리(淸白吏, 성품과 행실이 올바르고 무엇을 탐내는 마음이 없는 관리)로 벼슬을 마치고 고향에 내려와 경치 좋은 계곡을 찾아 만휴정을 지었다. 해 질 무렵 晩, 쉴 休, ‘늦은 나이에 쉰다’는 뜻이다.
나이 50에 청탁을 거부하고 과거를 치를 만큼 강직한 성격으로 벼슬이 이조참판과 대사헌까지 올랐다. 그 강직한 성격으로 연산군에 의해 관직에서 쫓겨나고, 다시 관직으로 돌아가는 일을 반복했다. 
그러다 연산군의 포악한 정치에 1,500년(연산군 6년) 벼슬을 그만두고 돌아와 세운 정자다. 여기서 학문을 연구하고 집안의 앞날을 준비하며 후진 양성에 힘썼다.

만휴정의 가을

정자는 계곡 건너편에 있어 외나무다리를 건너야 한다. 계곡은 깊지 않으나 물살에 깎인 반들반들한 너럭바위로 맑은 물이 미끄러지듯 끝없이 흘러내린다. 계곡 주변에는 푸른 소나무와 참나무들이 식물사회를 이루며 정자를 포근히 감싸고 있다.
흰색 화강암과 송암폭포의 시원한 물소리, 사계절 푸른 소나무 그리고 참나무 가지를 오가는 감미로운 새들의 노랫소리가 가득한 가장 한국적인 정자다. 미스터 션사인 촬영지로 젊은이들 사이의 SNS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다. 
보백당이 자식들에게 남긴 글에 ‘너희들이 잇달아 科名(과명, 과거)에 오른 것은 퍽 다행한 일이다. 이 고장 사람들이 더러는 나를 복이 많다고도 한다. 그러나 나는 집안이 번창한 것이 도리어 두렵다. 너희들은 이를 명심해 스스로의 몸가짐을 삼가고 사람들과 만날 때도 정성을 다해서 경박한 일로서 죽어가는 나에게 욕을 끼치지 말도록 하여라.’는 것이다.
후손들은 ‘持身勤愼 待人忠厚(지신근신 대인충후, 몸가짐을 삼가하고 남을 대할 때는 진심으로 하라)라는 글자를 현판에 새겨 만휴정 내부에 걸었다.

비사벌뉴스 bsb2718@hanmail.net

<저작권자 © 비사벌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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