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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식문화관광해설사의 숨겨진 문화재를 찾아서(99회)

기사승인 2022.08.11  08:5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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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江, 그리고 昌寧의 물길-Ⅳ(창녕의 정자)

○ 창녕의 정자(亭子)

뱀이 기어가듯 꾸불꾸불한 하천을 사행천(蛇行川)이라 한다. 산이 많은 우리나라 물길의 특징이다. 물길이 부딪히는 곳은 바위가 깎여 절벽이 생긴다. 이것을 하식애(河蝕崖)라 한다. 건너편에는 모래가 쌓이는 곳은 퇴적사면 또는 활주사면(滑走斜面)이라 한다.

즉 강물이 부딪히는 절벽은 공격사면(攻擊斜面)이라 하고 모래가 쌓이는 곳은 퇴적사면(堆積斜面)이라 한다. 공격사면 절벽에는 정자나 서원이 세워지고 퇴적사면에는 논과 밭이 생기고 마을이 생긴다. 강변 경관이 뛰어난 곳에는 어김없이 이름 있는 선비들이 정자를 지어 후학을 양성했다. 좋은 계절에는 뱃놀이를 하며 시문을 짓고 교류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 어부정, 이수정, 오여정, 합강정, 반구정, 망우정(여현정), 퇴휴정, 광심정, 소우정등 정자가 세워졌고, 일부는 세월에 쓸려 사라졌다. 이제 옛 님들의 흔적을 더듬어 길을 나서 보자.

○ 이노정(二老亭)과 어부정(漁父亭)

이노정(二老亭)은 달성군 구지면 낙동강 가에 있는 정자다. 이 정자는 조선 성종 때 대학자인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과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이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를 피해 머물던 곳이다. 두 늙은이란 환훤당 김굉필선생과 일두 정여창 선생을 말한다.

시를 읊고 풍류를 즐기면서 학문을 연구하고 후학을 양성하며 후일을 기약하였다. 당대에 대학자인 선생들께서는 자신들을 낮추어 정자의 당호를 지었다.

김굉필 선생은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가 일어나 무오사화 당인이라는 죄목으로 극형에 처해졌다. 정여창선생 역시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함경도 경성으로 유배되어 1504년 죽었는데 갑자사화가 일어나자 한훤당 김굉필이 사사될 때 부관참시 되었다.

김굉필은 무오사화를 당해 둘째 아들 김언상이 창녕현으로 이주시켰다. 고암면 계팔에 정착한 서흥김씨 김언상 후손들은 구니서당을 짓고 김굉필선생의 묘소가 있는 공자를 모신다는 뜻의 대니산((戴尼山)과 도동서원을 향해 구니서당(求尼書堂), 망도제(望道齊)로 이름 붙였다. 구니서당은 공자를 구하는 서당이란 뜻이고 망도제는 도동서원을 바라보며 기린다는 뜻이다.

어부정(漁父亭)은 이방면 등림리에 있는 진양 하씨(晉陽河氏) 정자이다.

등림산 아래 낙동강과 황강이 두 강이 만나는 지점에 산을 등지고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는 곳에 있다. 원래 진사(進士) 하부(河溥)ㆍ별제(別提) 하관(河灌)ㆍ통판(通判) 하홍(河泓) 3형제가 기묘사화(1519년)를 피해 삼우당(三友堂)을 지었는데, 퇴락하여 없어지고 후에 그 후손들이 다시 지어 어부정이라고 하였다.

어부(漁夫)와 어부(漁父)는 그 뜻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다. 어부(漁夫)는 고기잡이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이고 어부(漁父)는 강태공 같은 철학자를 말한다. 이곳 어부(漁父)는 저 춘추시대 초나라 충신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辭)에서 따온 듯하다. 굴원은 독창적이고 개성적인 시들을 지은 애국시인으로 초기 중국 시단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어부사(漁父辭)는 굴원과 어부가 문답식으로 지은 시(詩)로 “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창랑지수청혜 가이탁오영/창랑지수탁혜 가이탁오족)”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고/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으리라“는 지금도 회자되고 있는 유명한 구절이다. 어부정 아래 탁족대(濯足臺, 발을 씻는 바위), 어풍대(御風臺, 바람을 모시는 바위)가 있는 것을 보면 굴원처럼 나라 사랑의 기개가 엿보인다.

등림 제방 끝자락에는 이수정(二水亭)있었는데 없어져 흔적만 남았고, 그 옆에 사미헌장선생낙빈동빈유촉비(四未軒張先生洛濱同泛遺躅碑)가 서 있다.

어부정 뒷산은 등림산성(登林山城)이 있고 봄이면 노란 생강나무꽃이 지천이다. 트래킹을 좋아하고 개척정신 있는 사람이라면 등림에서 현창까지 등림개비리길을 걸어보는 것도 재미있다.

○ 간송(澗松) 조임도(趙任道)의 합강정(合江亭)

두 물이 만나는 곳을 두물머리라 물렀다. 경기도 양평의 두물머리는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지점이다. 한자로 양수리(兩水里)이다.

간송 조임도(1585-1664)선생은 낙동강과 남강이 만나는 용하산 기슭에 정자를 세웠다. 일반적으로 두 개의 물이 만나는 곳의 정자는 이수정(二水亭)이라 이름 짓는다. 그런데 이곳은 물이 합해진다는 의미의 합강정(合江亭)이라 했다.

자신은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제자이고 한강은 퇴계(退溪) 이황(李滉)과 남명(南冥) 조식(曺植)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퇴계는 낙동강 상류 안동 도산서당(陶山書堂), 남명은 남강 상류 산청 산천재(山川齋)에서 제자들을 길렀다. 퇴계학파는 낙동강으로, 남강을 타고 흘러내린 남명학파는 합강정에서 합해진다. 합강정은 간송선생 자신의 근원이 퇴계와 남명에게 있음을 밝힌 것이다.

간송은 23세 때인 1607년 용하산(龍華山)뱃놀이 당시 칠원(漆原)의 장춘사(長春寺)에서 공부에 열중하던 중 아버지 입암(立巖) 조식(趙埴)의 급보를 받고 모임에 동참하했다. 그의 감회는 <용화산하동범록후서(龍華山下同泛錄後序)>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49세 때 칠서 남지철교옆 내내 마을에서 강 건너 영산현(靈山縣) 용산(龍山, 현 남지읍 용산리)마을로 이사했다. 용산은 내내와 5리 거리다. 그리고 용산에서 건너다보이는 낙동강과 남강이 합류하는 용화산 기슭에 작은 정자를 짓고 합강정이라 했다. 말년을 옛 영산현에서 보낸 셈이다. 함안 사람이자 창녕 사람이다.

간송은 임금이 벼슬을 주면서 불렀는데도 나가지 않은 인물이다. 벼슬을 받고 나가지 않은 사람을 징사(徵士)라 한다. 징사란 학문과 덕행이 높아 임금이 불렀으나 벼슬하지 않은 선비를 말한다. 그래서 징사 간송 조임도라 불린다.

○ 두암(斗巖) 조방(趙垹)의 반구정(伴鷗亭)

임진왜란 때 곽재우와 더불어 의병 활동을 벌인 인물 가운데 함안의 두암 조방선생이 있다. 전란이 끝나고 함안 칠북 웃개 말바위(두암, 斗巖)에 정자를 지었는데 반구정이다. 갈매기(鷗)와 더불어 노닌다(伴)는 유유자적한 이름이다.

조방선생의 반구정은 의병장 곽재우가 지은 망우정(忘憂亭)과 강 건너로 마주 보이는 곳이다. 임진왜란 때 창녕․함안․합천 일대에서 의병활동을 같이한 사이로 틈만 나면 잘 익은 술을 배에 싣고 망우정으로 건너가 교류하였다. 사람은 가고 세월이 흐르면서 허물어져 160여 년 전(1858년) 후손들이 지금 자리로 옮겨지었다. 원래는 청송사(靑松寺)가 있었다. 700년 된 해묵은 느티나무가 그 역사를 이야기 한다. 느티나무 오른쪽 계단을 내려가면 먼저 간 아내를 위해 반구정 지킴이 조승도(88)옹이 세운 ‘선화지허(仙化之墟)’ 내용을 읽어보시라.

남지읍 수변공원 유채단지에 꽃이 만발할 때 반구정에 가보라. 천하의 절경이다. 또 하나, 유채꽃 필 무렵 진입로 주변에 핀 귀한 남방바람꽃을 꼭 보고 오시라. 눈이 호강할 것이다.

똑 같은 이름의 반구정이 경기도 파주에도 있다. 고려 말에서 조선 세종때 까지 임금을 보필한 청백리 황희정승이 지내던 정자다.

말년에 관직을 사양하고 고향에 돌아와 임진강 하류에 갈매기를 벗 삼아 지낸 곳이다. 갈매기를 벗 한다는 또 다른 정자 압구정(狎鷗亭)은 세조 때의 한명회(韓明澮)가 서울 한강변에 지은 정자다. 지금은 정자는 사라지고 이름만 남아 압구정동이 됐다. 청백리 반구정은 시간을 쌓으며 면면이 이어 내려오지만 당대를 휘젓던 한명회의 정자는 이름만 남아 지금도 인간의 욕망이 번득이는 거리로 남아있다.

합강정과 반구정을 찾아 답사했다면 그냥 발길을 돌리지 말고 보덕각과 쌍절각도 꼭 가봐야 한다. 불편한 점이 있다면 조금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내비게이션의 도움을 받으면 금방 찾을 수 있다.

강변 의령 땅에 임진왜란 때 곽재우의병장의 전승을 기념하는 보덕각(報德閣)과 마수원전투에서 전사한 손인갑과 손약해 부자(父子)를 기리는 쌍절각(雙節閣)이 있다. 근처 오천리에는 이순신장군과 함께 싸웠고 임진왜란 후에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를 지낸 이운룡(李雲龍)장군 묘소와 그 분을 위패를 보신 기강서원(岐江書院)이 있다.

보덕각과 쌍절각 표지석과 기강서원에는 눈이 밝으면 박정희 전 대통령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재미도 있다.

비사벌뉴스 bsb271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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