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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포늪에 왜 사냐고 물으면 그냥 웃지요

기사승인 2024.03.09  10:4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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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사진 이인식위원

2010년 우포늪 가 세진마을에 빈집을 수리하여 들어왔다. 디음해 3.12일 따오기 자연학교(우포자연학교)를 개교했다. 11명 이내의 작은 주말 기숙학교다. 교육내용이 자연에서 잘 노는 것이다. 모두 자원교사와 부모들이 같이 와서 밥해 먹고 우포늪 안에서 이것저것 하면서 스스로 사는 법과 자연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곳이었다. 첫 날, 아이들이 밭에 씨도 뿌리고 교육과정 워크숍도 하면서 1박 2일을 보냈다. 그렇게 보낸 세월이 13년이다. 지금은 시골 창고로 도서관과 자연학교를 만들어 주말에서 월 1회로, 이제는 분기별 자연학교로 운영한다. 나이가 들고 열정적인 자원교사가 부족하여 그렇게 되었다. 지난 세월 이 때쯤 북쪽으로 떠나는 고니류 모니터링을 아이들이 직접하는 페북의 과거 사진을 보면서 50대 말, 도시의 삶을 정리하고 자연에 기대어 살겠다고 들어와서 야생동식물들과 매일 만나면서 행복했던, 지금도 평화로운 삶을 회고해 보는 셈이다.

자연에 기대 살면서 자연스럽게 살아요

하루 두 끼 먹는 밥상의 모습은 비슷하지만, 계절에 따라 차이는 있다. 자연의 선물로 가지 수가 다양하다. 상치, 배추, 시금치, 무우말랭이와 깻잎, 고추짱아치, 따뜻한 밥에 얹어 먹는 밀장까지...이 밥상은 쌀과 배추된장국까지 인연의 고리로 만들어지는 위대한 밥상이다. 특히 서정희 짚풀 명인 어머니께서 매년 담가서 나누어 주시는 밀장은 명품이다. 밥 속에 제자도, 친구도, 지인도, 이웃까지 인연의 끈으로 나를 위하여 함께 나누어준 고마운 분들에게 두 손 모은다. 14년 세월 변함없이 늪 길을 걸어 맑은 공기 속에 내 몸을 온전하게 맡기면서 매일 매일이 평화롭고 행복하다. 내가 열정적인 삶을 살 때, 습지보전과 현명한 이용이라는 평생 화두를 실현하기 위해 오늘도 100여 마리가 남은 고니류를 기록하다가 루미(단정학)를 10여일 만에 만났다. 거제 산촌습지에서 1월을 보내고 우포에서 2월을 보냈다. 날개가 부실하지만 조만 간 북쪽 고향으로 잘 가서 좋은 연인 만나기를 두 손 모은다. 오늘은 매화향 맡으며 동네 한바퀴다. 나무며 새들에게 일일이 안부를 물었다, 따오기 한마리는 거짓말처럼 창고도서관 앞에서 선회 비행하다가 떠났다. 곧 봄이 오면 도서관과 자연학교 겨울 묶은 때를 벗겨내고 내부 정리를 해야겠다. 때까치도 날 빤히 쳐다보며 ‘하부지 곧 버드나무에 연두빛 오르고 흰눈썹 황금새 예쁜 소리 내면 자운영도 부끄러운 웃음으로 불그레한 마음 보여주겠지요.’라며 봄을 재촉한다. 3박 4일 동안 한일 환경교육 교류하던 활동가와 교수들이 오면 오늘처럼 동네 한 바퀴 할 때 얼굴 쏙쏙 내밀어 주며 웃는 얼굴 보여주시게나.

매화향 맞으며 한훤당과 곽준을 만나다

“남의 나쁜 점을 말하는 것은 피를 입에 물고 남에게 뿜으면 내 입이 먼저 더러워지는 것과 같으니 너희들은 이 말을 경계로 삼아야 한다.”는 말씀을 곱씹으면서 하루종일 책상머리에서 꼼지락거리다가 머리 식히자고 대니산 자락의 서원 몇 곳을 찾았다. 매화향 맡으며 백성과 나라 사랑에 목숨 내놓은 선현들을 찾았다, 이양서원은 곽안방의 청백리 서원이고, 솔례 12정려각은 임진전쟁 때 목숨 내놓은 곽준 안의현감(의병장)의 5가족을 기리는 곳이다. 옆 마을에는 한훤당 김굉필 선생의 종택이다. 정원 소나무를 바라보며 매화향에 취한다. 서원과 고택은 봄을 반기는 매화 향이 늘 그윽한 곳이다. 포산 곽씨의 암곡서원 대밭 속 매화도 그렇다. 도동서원 은행나무는 450년 고목이라 아직 봄을 부르지 않았다. 멀리 가야산이 보이고 낙동강이 노을에 물들었으나 다람재에 바위에 새겨진 환원당의 '노방송' 시귀가 오늘따라 고귀한 고독으로 가슴에 들어온다.

“한 그루 늙은 소나무 푸르게 길가에 서 있어(一老蒼髥任路塵)/ 괴로이도 오가는 길손 맞고 보내네(勞勞送往來賓)/ 찬 겨울에 너와 같이 변하지 않는 마음(歲寒與汝同心事)/ 지나가는 사람 중에 몇이나 보았느냐(經過人中見幾人)”

우포늪에는 따오기가 주인이 되었다.

아침을 햇님보다 먼저 따옥따옥 소리로 마을 주민 잠을 깨운다. 모곡마을 85세 할머니께서 따오기 소리에 잠을 깬다고 말씀하신다. 따오기는 이집트 나일강의 선물로 신으로 모시면서 그 징표로 미이라로 남겼다. 마을에 노인들이 다 사라지면 따오기 울음소리만 남을 것인가? 낙동강 지류 회천을 찾았다. 3일 현재 회천 호사비오리는 2마리만 관찰된다. 반면에 따오기는 우포늪 주차장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야생 둥지를 트기 위해 사랑놀이가 분주하다. 겨울동안 좋은 친구였던 호사비오리 12마리가 북상하기 시작한 시점은 1개월이 되었다. 북상한 두루미류나 기러기류, 오리류들이 번식지에서 자식들 많이 낳아 가을에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우포늪의 고니류도 140여마리, 기러기류도 7-8백마리 정도 남았다. 마지막 꽃샘 추위가 지나는 3.15일 경에는 넓적부리 등 오리류 일부만 남고 여름철새인 호랑지빠귀와 휘파람새, 흰눈썹황금새 등이 아름다운 소리를 내면서 늪안 버드나무류 연두빛 둥지를 준비할 것이다. 사지포 늪은 이제 매년 8-9백마리가 겨우 내내 머무는 '백조의 호수'로 자리 잡았다. 우포늪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해마다 늪 전체를 걷는 매니아가 많아졌다. 그 만큼 자연성이 뛰어난 생명길을 통해 걷기 명상으로 마음의 평안을 얻는 것 같다. 이제 남은 일은 더 넓은 서식지 확보와 친환경농업으로 야생과 사람이 건강한 공생의 공간으로 거듭나기를 소원한다. 그래도 우포늪에 들어 14년 동안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따오기를 위해 친환경농업을 해보겠다고 나선 마을은 없었다. 다행히 올해부터는 정봉채사진가와 주민들의 협력으로 노동마을 논을 따오기가 살아가는 곳으로 만들기 위해 힘을 모았다. 앞으로 쭉 지켜볼 일이지만 이렇게 마음 모은 것만도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올해 우포자연학교도 따오기를 기르는 논에 논생물조사를 하고, 미꾸라지 나누기 등 자연학습을 할 작정이다. 이미 정작가의 정성과 성심이 집뒤 소나무 숲에 따오기가 둥지를 준비하고 있

어 더욱 응원하고 싶다.

1998년 3월 2일 우포늪이 람사르습지로 등록된 날이다.

꼭 10년이 지난 2008년에 두가지 큰 역사적 일이 일어난다. 우포늪을 기반으로한 제10차 람사르협약총회가 경남에서 열리고, 중국으로부터 멸종된 따오기 한쌍을 들여온 해이기도 하다. 이런 일을 해오는데 가장 큰 디딤돌이 된 것은 1989년 교육민주화로 학교 현장에서 쫓겨난 탓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국가는 나를 버렸는데, 나는 인민과 국가를 위해 가시밭길을 걸은 셈이다. 91년 낙동강 페놀사건 이후, 무엇보다 나의 삶은 습지보전운동과 교육운동을 통하여 스스로 새로운 세상을 보는 눈이 열렸다. 한마디로 자연을 통한 배움이 깊어졌고, 낙동강 물처럼 도도히 흐르는 역사 속에서 스승들을 찾은 것이다. 지금도 그분들과 전쟁과 이념 갈등사이에서 파리목숨 보다 못한 대접을 받으며 사라져간 원혼들을 찾아 두손모아 위로하는 일이다. 남은 일은 일상적으로 아이들의 웃음을 들으며 자연배움을 나누고, 북에도 사라진 따오기를 품고 평양행 비행기에 오르는 일이다. 덧붙여 기후재난 시대에 우포늪 면적을 일제시대 전으로 복원하는 일이다. 그래서 홍수터 확보와 비 홍수기에는 야생동물 공원으로 활용하여 아이들과 가족들이 야생과 공존공생하는 공간을 만들고, 평소 밥 나누는 독수리 먹이가 되어 하늘 나라로 떠나는 것이 소원이다. 어쩌면 이 단순한 소망이 하늘의 뜻인지도 모른다.

비사벌뉴스 bsb271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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